밸류업 힘주다보니 성장은 뒷전… 딜레마에 빠진 금융그룹
파이낸셜뉴스
2025.08.03 18:05
수정 : 2025.08.03 18:27기사원문
(中) 생산적 투자 해법찾기 골몰
CET1 방어 위해 대출 관리 엄격
벤처·中企에 자금 쏟기 어려워
해외사업 확대·공격적 M&A 등
중장기 성장 목표 후순위로 밀려
상반기 역대급 실적을 쌓은 4대 금융지주가 하반기에도 '밸류업'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하지만 밸류업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정부가 요구하는 리스크 높은 투자를 병행하는 일이 '상충'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4대 금융지주가 해외 사업 확대나 공격적인 인수합병(M&A) 등 중·장기적 목표를 달성하는 투자를 줄이거나 후순위로 미룰 수밖에 상황이라는 것이다.
특히 올해 상반기 실적에서 금융그룹 내 비은행부문 이익 비중이 줄어든 가운데 4대금융이 밸류업을 강화하면서 성장을 위한 투자를 병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딜레마'에 빠졌다.
■상반기 비은행 비중 '뚝'
하나금융의 상반기 비은행부분 기여도는 12%로 지난해 말(15.7%)과 비교해도 3.7%p 떨어졌다. 하나금융의 비은행부문 기여도는 지난 2021년 32.9%를 기록한 이후 이듬해 18.9%, 2023년에는 4.7%까지 하락했다. 박종무 하나금융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하나증권에서는 보유하고 있는 해외 대체자산에 대한 평가를 새로 실시하면서 그에 따른 평가손 인식이 있었고 캐피탈 역시 해외 대체 자산에 대한 평가손 인식과 기업 대출 등에 대한 충당금 영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나금융은 비은행 기여도를 오는 2027년 30%까지 확대한다는 중장기 목표를 설정한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 회사의 수익은 결국 자산에서 나오는데 자산 규모를 키워야한다는 과제와 생산적 금융과 밸류업에 자산을 쏟아야한다는 과제가 상충하는 만큼 하나금융이 비은행 부문의 실적을 끌어올리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밸류업과 중장기 투자 '딜레마'
문제는 한정된 자산을 밸류업과 성장을 위한 중장기적 투자에 동시에 쏟을 수 없다는 점이다. 밸류업의 기준이 되는 보통주자본(CET1) 비율을 지속적으로 높이면서 동시에 위험가중자산(RWA)이 높은 투자를 단행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서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해외 투자나 M&A, 사업 다각화 등 장기 성장전략에 대한 투자가 시들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며 "생산적 금융을 하라는 당국의 요구는 국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자금을 쏟으라는 것인데 한정된 자산을 양쪽에 넣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실제 해외 최일선에서 투자은행(IB) 영업을 하는 시중은행 지점들도 CET1비율을 맞추기 위해 보증부대출 등 RWA가 낮은 우량자산을 중심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비은행인 보험사 인수를 위해 대규모 자금 투자를 감내한 우리금융지주가 CET1 비율도 함께 지키기 위해 핵심 계열사인 우리은행이 지난해 11월 기업대출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고, 올해 상반기 은행들은 기업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리지 못했다. 또 다른 금융지주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기업 대출은 CET1 방어 차원에서 성장세가 둔화된 상황"이라면서 "이미 많은 은행들이 기업 대출을 줄이거나 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관리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RWA는 CET1비율 산정 시 분모가 된다. RWA 수치가 올라가면 CET1비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은 대출 중에서도 리스크가 큰 만큼 정해진 RWA를 적용한다. 그런데도 일반적인 PF 투자의 RWA가 150% 수준인 반면 대부분의 스타트업이나 비상장주식 투자의 경우 400%의 RWA가 적용된다. 이정빈 신한은행 CFO는 "기업대출의 경우 올 상반기는 건전성 관리에 중점을 뒀지만 하반기에는 상반기와는 다르게 기업대출 시장에서의 자산성장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mj@fnnews.com 박문수 박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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