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우체부 vs 몸의 택배기사: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의 배달 전쟁"

파이낸셜뉴스       2025.09.10 14:47   수정 : 2025.09.10 14:4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은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호르몬이 내분비샘에서 분비된다면 신경전달물질은 뉴런(신경세포)에서 생산된다.

호르몬이 혈액으로 나와 온몸의 표적세포로 운반된다면, 신경전달물질은 뉴런에서 뉴런으로 이동하여 수용체와 결합한다. 호르몬은 효과를 내는 데에 몇 분에서 며칠이 걸리지만 신경전달물질은 신경계를 가로지르는 데에 수천분의 1초, 길어도 몇 분이면 충분하다.

호르몬은 인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만 신경전달물질은 국소적으로만 작용한다. 호르몬은 항상 무의식적 차원에서 작용하지만 신경전달물질은 무의식적 차원뿐만 아니라 의식적인 행동에도 관여한다.

이렇게 다르지만 호르몬도 신경전달물질도 화학적 메신저라는 점은 똑같다. 둘 다 몸의 항상성을 조절하고 신진대사에 관여하고 사고와 감정, 행동방식을 컨트롤한다. 신경전달물질이면서 동시에 호르몬으로 작용하는 것도 상당히 많다.

도파민은 중추신경계(뇌와 척수로 이루어진 신경계에 작용하는 신경전달물질)이면서 젖분비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하는 호르몬이다.

세로토닌도 위장관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자 중추신경에서 분비되어 기분, 식욕, 인지, 수면, 기억 등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옥시토신은 출산 시 자궁수축, 수유 등에 작용하는 방식에서는 호르몬이지만 행복감, 수면, 체온조절, 학습, 기억 등에 작용하는 방식에서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노르에피네프린은 간과 근육에서 연료대사를 조절하는 호르몬이자 스트레스 상황에서 뇌를 각성시키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사실 호르몬이냐, 신경전달물질이냐의 구분은 학문적으로는 중요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몸 안에서 만들어지는 일련의 화학물질이 우리 몸의 항상성을 조절하고 기분, 인지, 행동 등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또한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이 서로 얽혀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분리하여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서 필자가 전공한 내분비학도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을 함께 통합하여 연구한다. 내분비학 안에 신경계와 내분비계 사이의 기능적 관계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신경내분비학’이 별도로 존재하기도 한다.

또한 신경계 질환을 다루는 신경과와 정신질환을 다루는 정신건강의학과도 신경전달물질과 함께 호르몬을 통합하여 연구하고 치료에 적용한다.

다만 내분비학은 성장, 발달, 생식, 대사, 항상성 등 생리적 질환을 치료하고, 신경과는 뇌졸중, 치매, 뇌전증, 파킨슨병 등 신경계 이상으로 인한 질환을 치료하고, 정신건강의학과는 불안, 우울, 중독 등 정신질환을 치료한다는 차이가 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시냅스 연결은 전기신호 방식으로만 작동한다고 생각했다. 두 개의 뉴런 사이에 전류가 통과하는 채널이 있어서 서로의 전압 변화를 통해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것이 시냅스 연결의 유일한 방식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곧 전기신호는 매우 단순한 메시지만을 갖고 있어서 그 많은 다양한 신호를 구분하여 전달할 수 없다는 모순에 부딪쳤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바로 화학적 시냅스와 신경전달물질의 발견이다.

시냅스에 20~40나노미터(nm) 길이의 ‘시냅스 간극’이 있어서 이를 통해 특정 메시지를 가진 화학물질이 전달된다는 것이 동물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처음으로 밝혀진 신경전달물질은 ‘아세틸콜린’이었다. 1921년 독일 태생의 정신생리학자 오토 뢰비는 개구리에서 2개의 심장을 뛰는 상태로 분리해냈다.

첫번째 심장은 미주신경(12쌍의 뇌신경 중 10번째)이 연결된 상태였고, 두번째 심장은 연결된 신경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뢰비는 2개의 심장을 모두 식염수로 씻은 후 전기로 첫번째 심장의 미주신경을 자극했다. 그러자 박동이 느려지면서 심장이 어떤 액체로 뒤덮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뢰비는 그 액체를 덜어서 두 번째 심장에 발랐다.

그러자 두 번째 심장도 느리게 뛰었다. 단지 액체를 옮겨 바르는 것만으로 심장 박동이 달라졌다는 것은 미주신경에서 방출되는 어떤 화학물질이 심박수를 조절한다는 뜻이 된다. 이 화학물질이 바로 자율신경계의 가장 기본적인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이다.

뢰비는 이 물질을 발견한 공로로 193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후로 이미 발견했던 에피네프린, 글루타메이트 등이 신경전달물질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도파민도 추가로 신경전달물질로 확인되었다. 인간의 신경계에 사용되는 신경전달물질이 몇 개나 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100개가 넘는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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