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일희일비 말고 긴 호흡으로 갈 때다

파이낸셜뉴스       2025.08.10 19:00   수정 : 2025.08.10 19:00기사원문
北, 대남 확성기 철거로 반응 보여
안보 상황 엄중, 냉정히 판단해야

북한이 지난 9일부터 전방 일부 지역에서 대남 확성기를 철거하는 모습이 우리 군에 포착됐다. 우리가 먼저 대북 확성기를 모두 철거한 데 대한 화답으로 보인다. 지난 6월 11일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자 단 8시간 만에 대남 소음방송을 멈춘 데 이은 북한의 반응이다.

이를 언뜻 단절된 남북관계 개선의 신호로 볼 수 있다. 북한이 2023년 4월 남북 연락채널을 일방적으로 끊은 이후 철저하게 남한 무시전략을 유지해오는 와중에 그랬으니 긍정적 변화의 기류로 읽힐 수 있다. 더군다나 북한이 '북침연습'이라며 미사일 도발을 일삼았던 정례 한미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계획이 지난 7일 발표된 이후 철거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본격적인 남북대화 복원 등 실질적인 관계 개선으로 진전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본다. 장기판으로 치면 '졸(卒)'이나 '병(兵)'을 뒤로 한 칸씩 물렀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각자 움직임의 범위와 역할이 다른 상(象)·마(馬)·포(包)·차(車)를 거쳐 최종적으로 궁(漢, 楚)들 간 대화 성사 단계까지 가려면 거쳐야 할 관문이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김정은의 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우리의 잇따른 대북 유화정책에도 7월 28일 담화에서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며 "'조한관계(남북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했다. 좋든 싫든 대화의 당사자로 남한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표명한 것이다. 남녀 간 연애도 서로가 반응해야 잘되는데 상대가 꿈쩍 않으니 일이 진전될 리 만무하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대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도 우리에게 전적으로 불리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말 한미 관세협상 타결 직전 한국 측 통상팀에 생뚱맞게 김정은 안부부터 물어 협상단이 매우 당황했다고 한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김정은이 돌아오기를 기대한다"고 러브콜을 보냈다. 그러면서 북한을 수차례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불러 국제사회를 긴장시켰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상황은 매우 엄중하다.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고리로 방위비 분담 증액을 요구할 태세다. 김정은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 북미대화를 통한 핵 군축 또는 동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은 미국의 반대로 쉽지 않다. 이 와중에 북한과 러시아는 무기와 군사기술을 주고받고 있다. 이는 북한의 핵 고도화 달성 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 엄청난 위협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냉정하고, 침착하게, 긴 호흡으로 대북문제라는 고차방정식에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의 오판을 막고 실질적으로 남북 관계가 해빙 무드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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