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나사가 우리나라에 주는 교훈

파이낸셜뉴스       2025.08.12 19:01   수정 : 2025.08.12 19:01기사원문
차세대발사체 개발 놓고
우주청-항우연 의견 팽팽
나사의 전철 밟을까 우려



지난 7월 20일 인류의 달 착륙 56년을 기념하는 날,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아이젠하워 기념관 앞에서 100여명의 과학자와 시민이 모인 가운데 열린 시위가 미국 사회의 주목을 끌면서 한국 언론에도 소개된 바 있다. '나사를 구하라(SAVE NASA)'라는 피켓과 입간판을 내걸고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운 24%의 우주예산 감축과 극단적인 조직 슬림화 정책에 항의하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우주개발 역량이 크게 훼손될 것을 경고하여 국민의 공감대를 확보하려는 시위였다.

바로 다음 날 280여명의 전현직 나사 직원들이 연서명을 하여 나사를 위기로 규정하고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보이저 선언(The Voyager Declaration)'이 발표되었다.

나사의 임시 청장으로 임명된 션 더피 교통부 장관에게 보내는 이 공개 항의서한에서 지난 6개월 동안의 성급하고 낭비적인 변화로 나사의 공공자산이 낭비되고, 인력과 안전이 훼손되었으며, 국가안보가 약화되고, 나사의 핵심 임무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실제로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우주전문가를 포함한 4000여명의 나사 직원들이 자발적 퇴직 형태로 나사를 곧 떠날 예정이며, 계획 중이던 많은 과학프로그램이 중단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기업가 출신으로 효율을 중요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부효율부를 신설하고 뉴스페이스 혁신의 선두주자인 일론 머스크를 공동장관으로 추대할 때부터 비효율적인 임무 운영과 조직 구성이 나사 위기의 주요 원인이라고 판단하였기에 예산 및 인원 감축은 예견된 일이며, 적절한 우주프로그램의 구조조정이야말로 위기의 나사를 살리는 길이라고 믿는 것 같다.

이보다 앞서 트럼프 2기 출범 직전인 작년 10월경에 미 의회의 법적 요청으로 미국 한림원이 주관한 특별위원회가 작성·발표한 보고서 '갈림길에 선 나사(NASA at a Crossroads)'에서는 나사의 성과와 기술혁신의 노력은 인정하며 점점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우주임무를 위해 추가적인 예산이 더 필요하다고 언급하였다. 이 보고서는 나사의 야망과 예산상의 불일치로 최근 들어 실현 가능한 단기적 임무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신기술 개발을 지나치게 민간에게 의존하고 상당수 전문인력이 민간기업으로 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개발 및 인력 교육과 같은 더 평범하지만 중요한 기관적 필요를 위해 비용이 많이 드는 임무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도록 권고하면서 나사의 위기를 진단한 바 있다. 즉 트럼프 행정부와 나사 과학자 그리고 의회보고서를 작성한 미국 내 전문가들이 제시한 주장과 해결책은 제각기 달라도 '위기의 나사'를 언급한 것은 공통점이다.

한편 우리나라 우주 커뮤니티에서도 유사하게 상반된 위기진단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논쟁이 반년 넘게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우주경제의 미래의 큰 축이 될 차세대발사체 개발방식을 두고 우주청(KASA)과 개발 주체인 항공우주연구원, 학계 및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뉴스페이스 트렌드를 반영, 미래 우주분야 생존을 위해 발사체 개발에 혁신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급격한 혁신은 도리어 우리나라 우주산업은 물론 항우연을 비롯한 개발조직 전체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주장의 시비와 혁신의 지향점을 떠나 미 의회보고서에서 지적한 대로 우주분야 기술개발 및 인력 교육은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항우연을 비롯한 우주개발 주체들이 안정적인 목표 설정을 통한 임무성공 이력에 자신한 나머지 미래 임무에 충분히 도전적인 자세를 취했는지 여부를 돌아보아 나사가 처한 위기가 미래 우리나라 우주분야의 위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기획위에서는 우주산업 전반의 연구개발(R&D)을 대폭 확대해 선진국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고 한 만큼 10~20년 후 우리나라가 세계 우주경제의 신흥강자로 부상할지, 아니면 현재와 같이 내수시장에만 머무는 초라한 7대 우주강국이 될지를 결정해야 하는 갈림길에 놓인 것만은 분명하다.

주광혁 연세대 인공위성시스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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