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과제 비용만 210조 , 솔직한 증세 논의부터

파이낸셜뉴스       2025.08.13 18:53   수정 : 2025.08.13 18:53기사원문
AI 집중 등 국정 운영 청사진 발표
재원조달 방안 없이는 실행 어려워



탄핵 정국으로 급하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13일 앞으로 5년간 수행할 123대 국정과제의 얼개를 내놨다. '세계를 이끄는 혁신경제' '모두가 잘사는 균형성장' 등 큰 카테고리만 봐도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특히 정책을 일상에 잘 스며들게 하겠다면서 정책 아이디어를 일반 국민들로부터 제안받는 '모두의 광장' 플랫폼은 국민과의 소통을 최우선시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철학을 잘 드러내 신선하다.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요체는 0%대까지 고꾸라진 잠재성장률을 3%대까지 끌어올리고, 인공지능(AI) 3대 강국 진입으로 세계 5강 대열에 합류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다. 경제의 기초체력을 가늠하는 지표인 잠재성장률은 지난 2001년 5.4%에서 24년째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국정기획위는 저성장 타개를 위한 '신의 한 수'로 AI를 선봉에 내세웠다. 산업 생태계의 AI 대전환을 위해 AI고속도로를 구축하고, 차세대 AI반도체·원천기술·인재 양성을 토대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임기 5년간 공약 이행에 드는 비용은 총 210조원대로 추산했다. 재원은 94조원의 세수 확충과 116조원의 불요불급한 지출 절감으로 마련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지급된 소비쿠폰처럼 앞으로 경제활성화를 위해 돈 들어갈 곳이 산적해 있는데 곳간이 쪼그라드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국정과제는 국민 삶의 질 향상이 본령이다. 한마디로 국민이 잘 먹고 잘살게 해주는 거다. 과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위원회가 두달에 걸쳐 분야별 핵심 국정과제를 다듬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시장·도지사·당대표를 거치며 농축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운영 '눈높이'를 맞추는 거였다고 한다. '대국민 가계부'인 국정과제별로 설계·단계별 집행계획·정책적 기대효과를 꼼꼼히 작성하는 과정에서 수십차례 보완을 거듭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국정기획위가 내놓은 새 정부 국정과제 5개년 계획의 완성도는 높다는 평가를 해줄 만하다.

다만 구체적 재원조달 방안이 없는 것은 문제다. 공약 이행은 세수 확대 없이 재정 투입만으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AI 관련 공약 이행만 해도 천문학적 예산이 필요할 텐데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쉽지 않은 일이다. 오죽하면 이 대통령도 이날 '나라재정 간담회'에서 "옆집에서 씨앗을 빌려 오려 하니 '왜 빌려 오느냐, 있는 살림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 살림을 하다 보면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쓸 돈이 없어 고민이 많다"고까지 했겠는가.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만 올려선 될 일이 아니다. 조세저항이 불가피한 '세금 더 걷겠다'는 말이 쉽게 나오진 않겠지만 솔직하게 현 상황을 토로하고 대국민 이해와 설득 과정을 거치면서 증세 논의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물론 세금을 더 물리겠다는데 좋아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꺼져 가는 대한민국 경제의 엔진을 살리고, 산업생태계의 대전환을 통한 구조적 혁신을 추진하려면 곳간이 우선 든든해야 한다. 정치권도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 계산에만 몰두하지 말고, 진짜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 증세라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은 누군가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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