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자구·後지원 원칙만 정해… 구체적 지원책 빠지고 공정위 규제 걸림돌

파이낸셜뉴스       2025.08.20 18:09   수정 : 2025.08.20 18:09기사원문
정부 지원 기준은
"기업 재편안 가져와야 맞춤지원"
개편안 미제출·무임승차땐 배제
공정거래 규제완화 부처 협의중
서산도 산업위기지역 지정 검토

정부와 업계가 석유화학산업의 대규모 설비 감축에 합의하면서 구조조정의 큰 틀은 마련됐다. 하지만 '선(先)자구노력·후(後)지원' 원칙만 제시됐을 뿐 구체적인 지원책은 아직 비워져 있다. 기업별 맞춤형 패키지와 지역 고용충격 완화방안이 얼마나 실효성 있게 설계되느냐가 향후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기업 간 설비 감축 협의가 담합·독과점 문제와 직결되는 만큼 공정거래위원회 규제를 넘지 못하면 구조조정은 또다시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구노력 따라 달라지는 지원

20일 정부는 이번 합의에서 기업이 먼저 설비 감축·폐쇄·매각 등 자구책을 내야 정부 지원이 뒤따른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연말까지 사업재편 계획을 제출하면, 정부는 이를 토대로 금융·세제·연구개발(R&D) 지원을 포함한 종합지원 패키지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결국 구체적 패키지가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질적 내용은 아직 확인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원 패키지는 모든 기업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기업의 상황에 맞게 세부 내용이 달라질 것"이라며 "자구노력의 정도도 다른 만큼 맞춤형으로 지원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도 이날 협약식에서 "책임 있는 자구노력 없이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려 하거나, 다른 기업들의 설비 감축 혜택만 누리려는 기업은 정부의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구조조정의 실질적 성과를 가를 또 다른 변수는 공정거래 규제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과잉설비 감축 논의는 담합으로 간주돼 기업 간 협의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적 제약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런 공동행위가 허용되면 곧바로 '공급 제한→제품 가격 상승→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적 보완 없이는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산업부 관계자는 "공정위 등 관계 부처와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사업재편 방식이 다양한 만큼 일률적 기준을 정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사례에 맞춰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공정위 규제를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구조조정 성패의 최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역경제 충격 불가피…연말 분수령

설비 감축은 곧바로 지역경제와 고용에 직격탄을 줄 수 있다. 정부는 지난 5월 여수시를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한 데 이어 서산시 추가 지정도 검토 중이다. 고용노동부 역시 최근 고용위기선제대응지역 제도를 신설, 지난 19일 고용정책심의회를 통해 여수시를 지정했다. 이에 따라 여수시는 고용유지지원금, 생활안정자금 융자 등 차별화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고용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노사 갈등과 지역사회의 반발이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결국 업계가 연말까지 제출할 사업재편 계획이 분수령이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맞춤형 지원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얼마나 빠르고 실질적으로 실행되느냐가 구조조정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명예교수는 "자율구조조정이라는 정부의 큰 방향은 맞다"면서 "다만 소재산업 중요성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너무 약하게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단순히 구조조정을 하면 생존이 보장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내수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그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aber@fnnews.com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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