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적 이해가 더 중요해지는 AI 시대

파이낸셜뉴스       2025.08.20 19:28   수정 : 2025.08.21 17:08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눈앞의 현상이나 언어를 해석할 때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문장에서 특정 단어 하나에 집착해 전체 흐름과 맥락을 무시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언어는 단어 하나로 존재하지 않는다. 단어가 모여 문장을 이루고, 문장은 다시 문맥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맥락을 무시한 해석은 결국 “내가 옳다”는 착각만 강화한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맥락적 이해는 더욱 중요해졌다. 과거에는 키워드 중심으로 정보를 찾았다면, 이제는 AI와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문장 전체를 통해 의도를 전달해야 한다. 즉, 문맥을 기반으로 한 소통이 인공지능과의 대화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일상에서도 이런 차이는 쉽게 드러난다. 상사가 “이번 프로젝트는 좀 더 도전적으로 진행해 보자”고 말했을 때, 어떤 직원은 ‘도전적’이라는 단어만 붙잡아 “조금 무모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다른 직원은 전체 맥락을 고려해 “창의적이면서도 책임감 있게 추진하자”라고 이해한다. 같은 말이지만 단어 하나만 떼어내 해석하면 엉뚱한 행동과 오해로 이어진다.

언어는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

언어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의미는 맥락 속에서 발생한다”고 강조해왔다. 단어의 사전적 정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를 들어 ‘불’이라는 단어는 상황에 따라 따뜻함, 위험, 분노 등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벽난로에 불을 지폈다”와 “그의 눈에 불이 일었다”는 같은 단어지만 완전히 다른 뜻이다. 맥락 없이 단어만 해석하면 상대의 의도를 왜곡하거나 대화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정치 담론에서도 비슷한 오류가 나타난다. ‘개혁’이라는 단어는 어떤 사람에게는 “미래를 위한 변화”를 의미하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기존 질서의 파괴”로 해석된다. 결국 같은 단어가 진영에 따라 전혀 다른 맥락으로 소비되고, 이는 사회적 갈등을 키우는 원인이 된다.

인공지능 시대의 맥락 해석

오늘날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언어를 학습한다. 주목할 점은, AI가 단어 자체보다 맥락적 패턴을 더 중요하게 본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번역기는 단어를 기계적으로 치환하지 않고 문맥 전체를 고려해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든다. 반대로 인간이 단어만 붙잡고 자기식으로 해석한다면, 기계보다도 언어 이해력이 떨어질 수 있다.

소통 속도가 빨라질수록 맥락을 읽어내는 능력은 더 중요해진다. 맥락을 무시하면 작은 갈등이 커지고, 협력이 필요한 순간에도 불필요한 오해가 생긴다. 반대로 맥락적 사고를 기르면 대화가 원활해지고, 복잡한 상황에서도 균형 잡힌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전체 맥락을 보는 힘

맥락을 본다는 것은 곧 큰 그림을 보는 것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단어의 의미는 사용되는 맥락 속에 있다”고 말했다. 맥락을 무시한 채 단어만 붙잡는 태도는 언어를 죽은 기호로 만드는 것과 같다. 살아 있는 언어는 관계와 상황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이를 훈련하려면 몇 가지 습관이 필요하다.

첫째, 대화를 들을 때 특정 단어보다 문장의 흐름과 상황을 먼저 파악한다.

둘째,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만 하지 않고 “이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을까?”를 되묻는다.

셋째, 맥락적 해석을 통해 상대의 진짜 메시지를 읽으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특정 단어에만 매달려 자기 입장을 합리화하는 태도는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것은 언어의 본질을 왜곡하는 ‘선택적 청취’일 뿐이며, 관계에서도 통하지 않고 맥락을 중시하는 AI 시대에는 더욱 설 자리가 없다.


단어를 넘어 맥락을 읽는 힘은 단순히 오해를 줄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협력의 가능성을 넓히는 지혜다. 언어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더 나은 관계,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된다.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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