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도 답답하고 저도 답답하고…도울 방법이 없었다"
뉴시스
2025.08.22 09:25
수정 : 2025.08.22 09:25기사원문
"신고 이후 수사·조사 철저하게 이뤄져야"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등 관련 인프라 부족 가해자 66.9%가 친부모…부모교육 거론도 "아동학대 신고 문화 조성할 캠페인 필요"
[서울=뉴시스] 구무서 기자 = "여름에도 긴 옷만 입고 오는 아이가 있어요. 그럴 땐 뭔가 느낌이 오죠. 복도를 지나가다가 친구랑 살짝 닿았을 뿐인데도 너무 아파하는 거에요. 따로 그 아이를 불러서 팔을 걷어보니 온통 멍 투성이었어요. 그래서 신고를 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어요. 멍 자국이 사라지질 않는데 교사가 더 해줄 건 아무 것도 없더라고요."
아동학대는 피해가 발생하면 성장 전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무엇보다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아동학대를 예방하려면 전 사회적 경각심과 노력이 제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도한 선행학습을 소화하지 못하면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했다. 당시 담임교사가 학대를 의심해 학부모와 상담을 했는데 주의를 하겠다고 해서 신고까지는 가지 않았다.
A군이 5학년이 되자 과거 사정을 들은 새 담임교사 B씨는 A군을 주의 깊게 관찰했고 팔에 멍 자국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상담을 해보니 5학년이 되고 사춘기가 오면서 A군도 부모에게 반항을 했는데 부모가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결국 아동학대로 신고를 했지만 부모가 반성을 하고 있고 A군이 부모와 분리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달라진 건 없었다. B씨는 "그 다음 해에 담임 선생님한테 제 상황을 전달드렸는데, 당연히 이런 일이 있었으니 그 담임 선생님은 신고를 할 엄두를 못 냈다"며 "그 아이는 계속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용기를 내 신고를 하더라도 즉각적인 수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아동학대를 막을 수 없다. 전 국민적 공분을 산 '정인이 사건' 역시 세 차례나 신고가 있었지만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아 참사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2021년에는 아동학대 신고가 있는 경우 지자체 또는 수사기관이 즉시 조사 또는 수사에 착수하도록 아동학대처벌법이 개정된 바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즉각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초등교사도 "방임으로 신고를 했는데 경찰은 신고를 통해 부모가 경각심을 가지게 됐으니 염려 말라며 부모를 계도하는 식으로 하고 사건이 마무리됐다"며 "이런 건 신고를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며 경찰들도 답답해하고 저도 답답하고 모두가 답답한 상황이었다. 아이를 실질적으로 도울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신고 접수 후 현장 대응을 책임지는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이 있지만 인력 부족 탓에 제 기능을 발휘하기 힘든 실정이다.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권고 인원은 아동학대 의심 사례 50건당 전담 공무원 1명 배치인데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이 기준을 충족하는 지자체는 17개 시도 중 8개에 불과했다.
한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은 "경기 남부권은 올해 아동학대 신고 수가 급증하고 있는데 배치 기준을 충족하는 지자체는 많지 않아서 매일 야근을 해도 다 해결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신고가 많지 않은 곳에는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이 아동학대가 아닌 다른 업무까지 병행을 해서 본업을 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도 많이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즉각적인 대응이 아동학대를 예방하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재언 가천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신고 의무가 있는 분들이 보통 학부모와 계속 소통을 해야 하는 분들인데 조사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관계가 껄끄러워지고, 괜히 긁어부스럼을 만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라며 "신고 이후에 수사나 조사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아동학대 행위자의 66.9%가 친부모 가정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해 부모를 대상으로 아동학대 예방을 포함한 부모교육을 시행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밝힌 제3차 아동정책 기본계획 공청회안에 따르면 아동수당 신청 시 최초 1회에 한해 부모교육을 실시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국회입법조사처 '아동학대예방사업의 과제와 개선방향'에서는 중·고교, 대학 교과과정에서 아동학대 예방과 양육, 가족관계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필수 이수과목으로 편성하자는 대안도 제시했다.
김선숙 한국교통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부모교육 방법 자체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부모교육을 받게 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신고에 대해 전 국민적인 관심과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유 교수는 "아동학대 신고 전화번호를 모르는 국민들도 많을텐데, 정부 차원에서 캠페인 등을 통해 아동학대를 신고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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