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기한 단축, '제2 홈플러스 사태 낳을 수도"..'획일 입법' 재검토 목소리
파이낸셜뉴스
2025.08.26 17:26
수정 : 2025.08.26 17:2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티메프 사태로 촉발된 납품업체 대금정산 기일 단축이 유통 대기업의 재무 부담을 키워 '제2의 홈플러스 사태'를 촉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유통 대기업이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중소업체 대신 대기업 거래처를 선호할 경우 중기 협력사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26일 한국유통법학회와 한국유통학회가 공동 주최한 특별 세미나에서는 '대규모유통업법상 대금지급기일 단축의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관련 학계·업계·법조계 전문가들이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심재한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스타트업이나 중소업체는 짧은 정산기한을 지키려다 자금 압박으로 도산할 위험이 있고, 이 경우 납품업체 역시 대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현재 홈쇼핑은 무료 반품 기간이 30일로 길지만, 정산기한이 단축되면 이 기간이 보름으로 줄어들어 오히려 소비자 권익 보호 측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명균 호서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산주기 단축 논의의 본질은 주기가 아니라 지급 신뢰성 문제"라며 "위메프·홈플러스 사태는 내부통제와 거버넌스 부실에서 비롯된 만큼, 정책적 논의는 주기 단축보다 기업의 거버넌스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편의점·대형마트는 직매입 비중이 높고 온라인은 매입 구조가 혼재돼 있어 이를 무시한 획일적 단축은 산업 생태계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들도 정산 주기 단축 자체가 오히려 유통업계의 큰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데 공감했다. 토론자로 나선 박종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무리한 단축은 현금흐름에 악영향을 미쳐 제2의 홈플러스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며 "홈플러스 기업회생도 영업손실 누적과 신용등급 하락이 원인이었던 만큼 재무 여건이 취약한 기업에는 단축이 치명적일 수 있다"고 했다.
납품대금 정산 주기 단축 논의는 지난해 7월 판매자들이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한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에서 비롯됐다. 납품업체와 유통업체 간 정산은 기본적으로 '납품 → 유통업체 판매 → 판매대금에서 수수료 등을 뺀 금액을 일정 기일에 지급'하는 구조다. 현행 대규모유통업법은 직매입은 물품 공급일로부터 60일, 특약매입은 판매 마감일로부터 40일(월 단위 매입은 30일) 이내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판매 시점과 대금 지급 시점의 차이가 문제로 지적되면서 국회에서는 지난해 '구매확정 후 20일 지급' 법안이 발의됐고, 올해 4월에는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특약매입 10일, 직매입 30일'로 단축하는 추가 개정안을 내놨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올해 초 GS리테일·이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사를 대상으로 대금지급기한 실태조사를 진행하며 논의를 확대했다.
김태균 공정거래위원회 유통대리점정책과장은 정산기한 단축의 필요성과 관련해선 "정산이 늦어 납품업체가 은행 선정산 대출로 1조2000억원 이상을 조달하고, 연 6% 안팎의 금리를 부담하고 있다"며 "대금은 본래 납품업체 몫인 만큼 정산 단축은 스타트업 성장에 해를 끼치기보다 건전한 성장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산기한 단축은 업계 부담과 납품업체 보호를 균형 있게 고려해 추진할 계획"이라며 "실태조사 결과와 각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현실적 수용 가능성을 반영해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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