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나라 일궜지만 버림받은 나와 그들… "소설로 위로"
파이낸셜뉴스
2025.08.26 18:17
수정 : 2025.08.26 18:17기사원문
강만수 전 기재부장관 첫 소설집
1970년대의 가난한 공무원부터
정치 소용돌이 휩쓸린 인물까지
수많은 '나'로 일생 담담하게 풀어
현재 검찰 시스템 신랄하게 비판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외환위기) 때는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IMF 자금 지원 협상을 맡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엔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한미 통화스와프 등 위기대응을 주도했다.
해방둥이로 태어나 경제관료로 족적을 남긴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의 압축한 이력이다. 강만수 전 장관이 2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소설집 '최후진술(사진)' 북콘서트를 열었다. 소설가의 꿈을 이뤘지만 강 전 장관은 "회한과 그리움이 여전하다"고 했다.
소설 속 '나'는 경주세무서 총무과장, 1977년 부가가치세 도입 때는 재무부 간접세과장이기도 했다. 그 시절의 고민과 공직생활 애환을 '쪽새미 애가' '세종로 블루스'에서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경주의 유흥가인 쪽새미를 배경으로 한 '쪽새미 애가'는 1970년대 하숙비 정도의 월급으로 살아가는 당시 후진국 대한민국 공무원의 비애를 그렸다.
IMF 구제금융에 관한 '환란전야', 씨티뱅크와 GM 같은 강자가 쓰러지는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세계 수출 7위의 강자가 된 것을 풀어낸 '애비는 어이하라고'는 한국 현대사 도전과 응전의 소설적 기록이라 할 만하다.
'환란전야'에서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포로인가' 짐승같이 다루네. 불낸 사람은 어디 두고 우리만 잡고 야단이야"라고 '나'는 말한다. IMF 환란은 이미 1996년 시작됐고 고금리, 낮은 관세율, 고평가 환율은 환란에 불을 질렀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원인 제공자는 찾아내려 하지 않고 당시 경제부처 고위공무원들만 검찰에 불려가서 '환란'이라는 죄명을 달고 '조리돌림'을 당했다고 담담하게 서술한다.
소설집 제목인'최후진술'은 4년8개월 감옥살이의 '가혹, 비정, 억울함'에 피를 토하면서 쓴 '나'의 고발장이다. 억울함이 너무 커 책 제목 바탕도 빨간색으로 했다고 한다. 소설 속 죄목은 'K은행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와 D조선의 분식회계 관여'. 산업은행 회장을 지낸 강 전 장관의 현실 죄목과 흡사하다. '최후진술'에서 '나'는 검찰 출석에 앞서 포토라인에서 말한다. "부끄러운 일 안하고, 부정한 돈 안 받고, 평생을 나라 위해 일했습니다. 보도된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
하지만 첫번째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불구속 기소를 하는 일반적 관례와 다르게 검찰은 6개월간 먼지떨이식 수사 끝에 구속했다.'나'는 "검사는 소설가, 판사는 평론가"라고까지 했다. 검사는 '조물주'라고까지 말한다.
소설은 현재 진행 중인 검찰개혁과도 연결돼 있다. "검찰이 수사도 하고 기소도 하고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소도 마음대로 하는 문명국가는 없다"고 '나'는 말한다. "살아있는 권력에게도 창의적으로 수사하기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도 던진다. 경제는 선진국이 되고 한류는 세계가 열광하는데, 법조는 억울이 클수록 시장이 커지는 문명 이전의 카르텔을 강고하게 지키고 있다고도 했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 한평생을 일하고 받은 최고훈장 청조근조훈장을 한강에 던지며 "아! 사랑했던 나의 조국이여!"로 '최후진술'은 끝난다.
강 전 장관은 "세계가 놀라는 기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수고와 땀이 정치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내동댕이쳐지거나 돌팔매를 맞는 숱한 현실을 바꾸는 한 장의 낙엽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