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제목만 봐도 어느 언론사인지 알 수 있다?

파이낸셜뉴스       2025.09.01 10:09   수정 : 2025.09.01 10:0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기사 제목만 보아도 어느 언론사에서 작성했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는 현실은 우리 언론이 얼마나 편향에 물들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언론의 기본은 정론직필(正論直筆)과 불편부당(不偏不黨)이다. 바른 말을 곧게 쓰고, 특정 세력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원칙이다.

그러나 오늘날 언론은 이 원칙을 내던지고, 특정 진영의 이해관계에 따라 제목을 뽑고 기사를 쓴다. 그 결과 언론은 사실 전달자가 아니라 이해집단의 선전 도구처럼 전락하고 있다.

독자들이 제목만으로도 언론사를 짐작하는 이유는 언론마다 반복되는 언어 습관 때문이다. 어떤 매체는 자기 편을 옹호하는 단어를 남발한다. 또 어떤 매체는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일관되게 두둔하거나 공격하는 방식으로 제목을 붙인다. 제목에 드러난 단어와 문장 구조만으로도 어느 매체의 기사인지, 어떤 방향성을 지녔는지 가늠할 수 있는 상황이다. 언론이 지켜야 할 공정성이 이미 무너졌음을 말해준다.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언론사가 달라지면 제목도 전혀 달라졌다. 독자는 제목만 보아도 어느 쪽의 기사인지 분간할 수 있었다. 사실을 전달하기보다 특정 프레임을 주입하는 행위에 가까웠다.

정치 기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난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면 이미 제목부터 다르다. 조롱하거나 과장하거나 하는 식의 제목이 여지 없이 달린다. 객관적 사실보다 공포심을 자극하는 표현을 앞세운 것이다. 환경 규제를 다룰 때도 보수 성향 언론은 “환경 규제, 기업들 압박한다”는 제목으로 기업의 피해를 강조했고, 진보 성향 언론은 “기업 이익 위해 환경 외면”이라는 제목으로 기업의 탐욕을 부각했다. 동일한 사안이지만 어떤 가치판단을 전제로 하느냐에 따라 제목이 달라졌다. 언론이 진실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는 도구로 제목을 활용한 사례다.

제목은 기사의 관문(關門)이다. 관문이 기울어져 있으면 본문을 읽기 전에 이미 독자의 판단은 왜곡된다. 정론직필이란 단순히 맞는 말을 쓰라는 뜻이 아니다. 권력이나 자본, 진영 논리에 흔들리지 않고 사실을 바르게 기록하라는 원칙이다. 불편부당 또한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균형을 지키라는 요구다. 제목에서부터 편향이 드러나는 현실은 이 원칙이 송두리째 무너졌음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독자들에게 남는 것은 불신이다. 제목만 보고도 언론의 성향을 가려낼 수 있다는 것은 언론이 이미 신뢰를 잃었다는 방증이다. 사람들은 점점 자기 성향에 맞는 기사만 읽게 되고, 사회적 분열은 심화된다. 그렇지 않아도 추천 알고리즘에 의해 자극적 제목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독자는 뉴스에 피로를 느끼고, 언론 전체에 대한 혐오로 이어진다. 결국 언론이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셈이다.

언론의 신뢰 회복은 제목에서 시작된다. 독자는 제목만 보고 기사를 단정하지 않고, 본문과 맥락을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언론은 제목을 클릭을 위한 미끼로 삼지 말고, 사실을 담는 최소한의 장치로 다루어야 한다. 교육 현장에서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해 독자가 비판적으로 기사를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언론은 스스로 공정성을 내세운다. 그러나 제목만 보아도 어느 편인지 드러나는 상황에서 그 말은 공허하다. 언론이 제 기능을 되찾으려면, 단 한 줄의 제목에도 책임과 철학을 담아야 한다. 자극적이고 편향된 제목은 일시적으로 주목을 끌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언론의 존재 가치를 해친다. 바른 제목, 균형 잡힌 제목을 쓰는 작은 변화가 언론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다.

세상에는 언론이 밝혀야 할 진실이 많다. 언론의 역할은 그 진실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일이다. 제목만 보아도 매체의 성향이 드러나는 현실은 언론이 본분을 저버렸다는 증거다.
지금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작은 제목 하나에도 원칙을 담을 때, 언론은 다시 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박용후/관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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