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공동체의 조화

파이낸셜뉴스       2025.09.01 18:49   수정 : 2025.09.01 18:49기사원문

개인과 공동체가 대립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마이클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관류하는 주제도 바로 이 문제다. 허리케인이 불어와 전기가 끊기고 생필품 공급이 어려워지자 상점들이 생수와 얼음 혹은 발전기 같은 생존에 필요한 물건을 비싸게 파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중시하는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이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반면 공동체주의자들은 재난 상황에서의 탐욕 추구는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다.

딜레마와 같은 이 문제의 해법을 개인의 취향에만 맡길 수는 없다. 최근 국내외에서 발생한,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다양한 부조화와 불균형을 목격하며 새삼 이 문제가 관심을 끈다. 인류 역사에서 그 사례를 찾아보자.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왕이 보여주듯이, 고대에 인간은 공동체를 위해서 존재했다. 테베의 왕권 유지라는 개인의 이익과 반인륜적 행위로 국가가 처한 위기 상황의 극복이라는 공동체의 이익이 대립하자,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실명에 이르고 왕권을 포기한다.

그러자 신들의 분노가 풀리고 폴리스는 이전의 평온과 질서를 되찾는다. 주인공도 내면의 만족을 얻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공동체적 존재(zoon politikon)"로 정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흐름은 다소 차이는 있지만 중세의 순교자들에게도 이어진다.

르네상스 이후 개인은 공동체와 대립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인간은 그 자체로 완전하고 독자적인 존재로 간주된다. 개인을 뜻하는 영어 단어 'Individual'의 등장이 그 증거다. 15세기에 만들어진 이 단어는 어원상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존재'를 뜻한다. 이제 인간은 공동체에 종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존재로 간주된다. 대표적 문화현상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이다. 주인공의 행위는 한결같이 마을 사람들의 조롱을 살 뿐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부패한 현실을 바로잡고 약자를 보호하며 정의를 실현하려는 이상이 존재한다. 근대적 주체는 공동체와 분리되어 있지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려는 긍정적인 이상을 잃지 않는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토머스 핀천의 작품 '제49호 품목의 경매'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주인공은 거의 예외 없이 공동체와 분리되어 파편화되고 고립된다. 존재하는 것은 의미 없는 개인의 욕망뿐이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인간이 무한한 욕망, 정체성 상실, 그리고 공동체와의 관계 소멸을 본질로 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런 시대일수록 개인들은 서로 간에 윤리적 책임을 느끼고 견고한 연대를 형성함으로써 공동체적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하버마스가 공론장을 통한 합리적 의사소통을 주장한 것은 사회 모든 영역에서 균열이 엿보이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매우 의미 있다. 샌델이 정의란 미덕과 공동선을 넘어 존재할 수 없다며, 개인의 권리와 공동체의 목적을 공적 토론을 통해 적극 조율하자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약력 △65세 △서울대 독문학 박사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독문과 포스트닥 연수 △성신여대 독일어문·문화학과 교수 △한국 브레히트학회 회장

김길웅 성신여대 인문융합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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