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가 가르쳐준 것들

파이낸셜뉴스       2025.09.01 18:51   수정 : 2025.09.01 18:51기사원문

도쿄에서 지낸 3년은 수많은 '한국'을 마주한 시간이었다. 일본이라는 거울에 비친 한국은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미디어의 프레임, 정치인의 언어, 시민의 반응, 외국인의 호기심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내가 아는 한국'과 '그들이 말하는 한국' 사이를 오갔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나만의 시선이 있었다.

일본 정치기사를 쓸 때면 가장 어려운 건 거리 조절이었다. 기자의 중립성과 한국 독자들이 기대하는 감정의 밀도 사이에서 종종 '한국인의 시선'을 요구받았다. 그러다 곧 알게 됐다. 정작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건 국회의 말이 아니라 골목을 지키는 가게 주인의 한마디였다.

"한국에서 온 손님들은 웃을 때 눈이 참 예뻐요." 아카렌카 창고의 점원이 건넨 이 말은 어떤 외교수사보다 뭉클했다. 집 앞 편의점의 점장님은 "안녕하세요"라며 매번 한국어로 인사해줬고, 신라면을 계산대에 올리면 "그거 제일 좋아해요!"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혐한 시위의 뉴스가 도는 날에도 그런 말 한마디가 이 세계를 다시 환하게 했다.

한일 관계는 뉴스에서 전략적 계산으로 다뤄지지만 현장에서는 감정과 호감, 일상의 작은 습관이 더 길게 남았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두 나라가 때로는 오해하고 때로는 웃는 장면들. 그게 내가 도쿄에서 가장 많이 목격한 '한일'이었다. 가끔 일본 지인들이 물었다. "한국은 왜 그렇게 자주 싸워요?" "왜 그렇게 속도가 빨라요?" 처음엔 웃으며 넘겼지만 문득 그 질문들에 오래 머물게 됐다. 그건 한국 사회의 갈등 과잉이 아니라 관심의 농도에 가까웠다. 싸움은 곧 참여였고, 그만큼 뜨겁게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반대로 일본을 지켜보며 가장 많이 느낀 키워드는 '조심스러움'이었다. 말 한마디에도 맥락이 따르고, 결정 하나에도 공감대를 먼저 살핀다. 모두가 이해 가능한 선에서 움직이기에 빠르진 않지만 균형은 유지된다. 그런 일본 안에서 보면 한국은 지나치게 솔직하거나 다혈질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솔직함과 열정이야말로 이 사회를 끌고 나가는 에너지였다.

신오쿠보의 한국 음식점엔 늘 긴 줄이 늘어선다. 손님들은 드라마 속 장면을 따라 하듯 소주를 주문한다. 가게 안엔 한국어, 일본어, 영어가 뒤섞였고 모두가 거리낌 없이 서로의 문화를 즐겼다. 국경을 넘는 건 콘텐츠였지만 그걸 일상으로 만든 건 결국 사람이었다.

언젠가 오사카에서 만난 재일동포 3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늘 양국 사이에 있어요. 그런데 사이에 있다는 건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사이가 있다는 건 연결이라는 뜻이니까요."

이런 사람들 덕분에 나는 뉴스를 넘어선 관계를 믿게 됐다. 혐한도, 반일도, 그것이 모든 진실이 아니란 걸 현장에서 체감했다. 감정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지만, 감정을 녹이는 것도 사람이었다.

도쿄는 맑은 풍경보다 표정이 인상적인 도시다. 눈인사로 시작된 단골 라멘집, 정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던 인터뷰이, 새벽에 이메일로 긴 답장을 보내준 도쿄대의 교수. 다들 한일 관계라는 단어보다 먼저 '사람'으로 남았다.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바라볼 한국은 도쿄에 오기 전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일본이라는 렌즈는 앞으로도 내 시선 어딘가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일본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곳의 편의점 조명과 지하철역 플랫폼에서 흘러나오던 도쿄 메트로의 멜로디를 함께 떠올릴 것이다.

외교, 무역, 역사, 안보 같은 복잡한 한일 문제 속에서도 이 틈새를 비집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국경은 분명하지만 마음 사이엔 경계가 없다.
그 마음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도쿄에서 배웠다. 내가 경험한 이 '사이의 기억'이 누군가에겐 새로운 시선이 되기를 바란다. 한일 관계, 그 복잡한 간극 사이에서도 정답은 늘 사람이다.

k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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