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중독' 탈출법
파이낸셜뉴스
2025.09.03 18:51
수정 : 2025.09.03 18:51기사원문
내년 예산안 첫 700조 돌파
재정확대로 경기활력 모색
李대통령 공약, 명분도 있어
국회 심의 과정이 남아있긴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때인 2022년 증액규모(49조7000억원)를 훌쩍 뛰어넘을 게 확실시된다.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예산으로, 다시 말해 정부 재정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증액은 이해할 만하다. 전 국민에게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했지만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9%다. 미국 주도 관세폭탄에다 비상계엄, 탄핵을 거치면서 소비심리가 극도로 악화된 탓이다. 경기흐름을 감안할 땐 이재명 대통령의 '재정 씨앗론'은 시의적절한 측면이 있다.
재정역할 강화는 이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새 정부 첫 예산안에 이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이 대통령은 내년 정부 예산안 국회 제출을 위한 국무회의에서 "지금은 어느 때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고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려서 농사를 준비하는 게 상식이고 순리"라고 말했다. 한 해 사이 나랏빚 142조원 증가에도 재정 확대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은 대선에서 49.42%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75석으로 압도적 의석을 갖고 있다. 재정확대 정책을 시행할 명분과 힘은 있다.
재정투입 확대가 불가피하다면 운용의 묘가 답이다. 국내총생산(GDP) 증가, 즉 지속적 경제성장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부문에 재정을 투입하면 씨앗이 곡식이 되고 나중에는 씨앗을 안 빌리는 단계까지 도약할 수 있다. 물론 씨앗을 잘 자라게 하려면 밭도 가꿔야 한다. 기업경영 환경에 좋은 토양을 만들어 줘야 뿌린 씨앗이 풍작이라는 결실로 맺어진다. 재정이라는 씨앗이 경기회복, 혁신,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기업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
바야흐로 대전환기다. 세계화를 앞세운 자유무역체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높은 수출 비중으로 세계화 수혜국이었던 우리나라에는 역풍이다. 자유무역은 빛이 바랬고, 국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기존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무시한 일방적 상호관세, 품목별 관세 부과가 미국의 대표 무기가 됐다. 트럼프 2기와 함께 국가자본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이 같은 미국의 '일방주의' 대외정책 기조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대표되는 지지층도 두꺼워 트럼프 이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도 초긴장 모드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뉴노멀(새로운 기준)"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한미 관세·외교·안보협상을 놓고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계속되는 협상"이라고 했다. 예측 불허인 미국에 휘둘릴 여지가 높다는 의미다. 그런 측면에서 상당 부분 내수개선에 초점을 맞춘 정부의 재정확대 기조는 타당하다. 내수를 키워야 관세 확대,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따른 수출 타격을 넘을 수 있어서다.
급속한 전환기엔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만의 특수상황 때문이다. 만약에 재정을 쏟아도 저성장세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어쩔 것인가. 유럽의 재정 모범국이었던 프랑스가 반면교사다. 프랑스는 최근 몇 년간 GDP 4∼6%에 달하는 재정적자가 지속되면서 국가채무가 급증했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정부도 선진국들의 재정준칙 기준인 GDP 3% 재정적자를 뛰어넘는 4%대 적자가 이 대통령 임기 말까지 지속된다고 예고했다. 일본 사례도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경험에서 보듯 적자재정으론 경기를 지속적으로 활성화할 수 없다.
재정건전성은 대외환경 변화에 취약한 한국 경제엔 최후 방어선이다. 무너지면 위기다. 재정 지속성을 기본으로 한 장기성장전략을 마련하겠다는 정부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 '적극재정, 경제성장, 지속가능 재정'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의 성공모델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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