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보국에서 각자도생으로
파이낸셜뉴스
2025.09.04 18:52
수정 : 2025.09.04 19:15기사원문
노란봉투법 복합적 생태계 부정
관리못하는 영역까지 책임 확장
고율의 상속세는 가업승계 발목
사업지속성 담보되지 않는 한국
기업 事業報國 사명감도 무너져
급변한 경영환경 각자도생 해야
사업보국은 민족자본을 형성하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영철학과 비전으로 경제활동이 개인적 이익 추구를 넘어서 국가와 사회를 발전시키는 기본동력이라는 근대 기업가 정신이 압축되어 있다. 21세기 글로벌 디지털 시대에도 오랜 연륜의 국내기업들이 표방한다. 또한 시대에 따라 단어는 변천하지만 기본개념은 이어져서 최근 트렌드인 사회책임경영(CSR), 환경·사회·지배구조(ESG)경영도 유사한 맥락이다.
이러한 사업보국의 유효성이 지속되려면 2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사업에 필요한 제도적 여건 및 소유권의 안정이다. 먼저 기업활동을 위한 제도적 여건의 뒷받침이다. 조선시대의 봉건적 신분제에서는 탁월한 기업가적 자질의 보유자조차 활동공간이 생겨나지 않는다. 20세기에 사유재산과 시장경제가 확립되는 근대적 제도가 성립되고 기업가들이 배출되면서 사업보국의 환경이 형성되었다. 다음으로 소유권의 안정은 법치와 조세이다. 정치권력이 자의적으로 법을 제정·해석·집행하는 절대왕정이나 공산체제에서 개인의 소유권은 무의미하다. 또한 법률적으로 선언된 형식적 소유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식이 세금이다. 자산의 유지가 불가능한 수준의 고율 세금이라면 소유권은 사실상 부정된다.
경영전략적 측면에서 소위 노란봉투법의 문제점은 SCM가치사슬 생태계의 붕괴이다. 근대 산업·기업 발전의 핵심은 분업의 심화이다. 조달·생산·물류·기술 등 부문별 프로세스의 생성·연결·통합·분화의 무한 반복이 바로 혁신의 사이클이고, 이는 단위 회사와 특정 국가를 넘어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된다. 이를 반영하여 거래 당사자 간 계약구조도 복잡해지면서 산업이 고도화되고 기업이 성장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 자동차, 화학 등 모든 산업의 현재 거래구조는 지난 수십년간 진화적 경쟁에 기반하여 최적점을 모색한 혁신의 산물이다. 노란봉투법은 이러한 복합적 생태계를 부정하고 원청과 하청이라는 갑을의 권력관계로 단순화하여 기업이 관리·통제가 불가능한 영역까지 책임의 범위를 확장하였다.
이에 따라 가치사슬 생태계 전체가 분업적 가치경쟁이 아니라 역학적 권력투쟁으로 빠져들게 된다. 기업가는 시장에서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가치경쟁이라는 본질보다 중층적 납품구조에서 발생하는 정치·사회·경제적 모순의 해결사가 되기를 강요받게 된다. 경영적 판단을 내리는 기업인의 전문가적 역할은 물론 사업의 지속성조차 부정되는 상황이다.
소유권 안정 측면에서 고율의 상속세는 기업의 정상적인 승계 자체를 부정하는 수준이다. 창업 이후 2세대만 내려가도 산술적으로는 국유기업이 되는 구조에서 선택지는 극히 제한적이다.
기업가의 책무는 현재 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하고 미래에 성장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사업보국을 위한 전제조건이 결여된다면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방도를 찾아야 한다. 비유하자면 국가는 기업에 제도와 법률로 활동공간을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만약 플랫폼이 참여자의 활동공간을 제약하고 존재가치를 부정한다면 플랫폼을 이탈해서라도 살길을 찾는 것은 당연한 방향이다. 흔히 각자도생은 사회적 안전망 약화로 개인 각자가 생존의 길을 찾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제도적 안전망이 붕괴되는 상태에서의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국제질서의 변화로 촉발되는 글로벌 경제·산업의 가치사슬 재편은 각자도생의 관점에서 역설적으로 기회요인이기도 하다. 국내외적 변화가 몰아치는 21세기에는 각자도생의 관점에서 생존과 성장의 새로운 공간을 찾아야 한다.
■약력 △62세 △서울대 농경제학과 및 동대학원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김경준 전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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