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몬’과 방시혁

파이낸셜뉴스       2025.09.06 09:00   수정 : 2025.09.06 09: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전 세계 극장에서 수백 명의 아이들이 “거나비거나비 골든”을 합창하고, 투어버스에서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유아 마이 소다팝”에 맞춰 어깨춤을 춘다. 이 광경은 지금으로서는 당연하게 보이지만, 불과 3~4년 전만 해도 불가능한 장면이었다. 코로나 시국은 모임 자체를 금지했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무대가 취소되고 공연장이 멈췄던 그 시절, 전 세계 팬들이 오늘처럼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은 상상조차 어려웠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 하이브 방시혁 의장이다. 그가 상장을 미룬다고 하면서도 이익을 챙겼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제대로 보려면 2020년 당시의 현실을 떠올려야 한다. 지금 우리가 아는 하이브(BTS를 넘어 멀티 레이블과 글로벌 IP를 보유한 대기업)는 그때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빅히트는 “방탄 원툴 컴퍼니”라는 비판을 받던 회사였다. 주 수익원이던 BTS가 군입대를 하면 회사의 미래가 사실상 사라진다는 불안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코로나로 공연 산업 자체가 마비됐다. 상장 여부는 고사하고 기업의 존속 자체가 위태로웠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자가 “상장이 곧 된다”고 장담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투자자를 기만하는 말이 됐을 것이다. 불확실성이 극에 달한 시절, 방시혁 의장은 오히려 스스로 리스크를 짊어졌다. 신규 투자자들(스틱, 이스톤)이 기존 투자자들로부터 지분을 인수할 때, 혹여 상장이 무산될 경우 본인이 직접 지분을 되사겠다고 약정한 것이다. 이는 시장을 속이기 위한 꼼수가 아니라, 반대로 시장 불확실성을 완화하기 위한 위험 부담이었다.

결과만 보면 방시혁은 천재적 전략가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빠지기 쉬운 오류가 있다. 바로 ‘케데몬’ 즉, 결과로 과정을 재단하는 오류다. 하이브는 상장에 성공했고, BTS는 다이너마이트로 빌보드 1위를 차지했으며, 회사는 이후 멀티 레이블 전략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2020년의 시선으로 돌아가면, 이 모든 것은 불확실성의 연속이었다. 만약 다이너마이트가 빌보드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면? 만약 상장이 흥행에 실패했다면? 방시혁은 막대한 자금을 들여 지분을 떠안아야 했고, 오늘의 하이브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 방시혁이 당시 체결한 계약은 도박이 아니라 책임의 표현이었다. 자신이 키운 회사를 위해 스스로 최종 보증인이 되겠다는 선택이었고, 그 선택이 결과적으로는 성공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성공했다고 해서 그때의 모든 결정이 ‘처음부터 계획된 승리’였다고 보는 것은 역사를 단순화하는 위험한 태도다.

투자자들의 반응도 이를 보여준다. 상장으로 큰 이익을 거둔 기존 투자자들 사이에서 사기를 당했다며 문제를 제기한 사례는 없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이익을 봤기 때문이다. 만약 방시혁이 의도적으로 속였다면, 불만과 소송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이는 당시의 계약이 시장을 해치는 불공정 거래가 아니라, 오히려 시장 불확실성을 감당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방증이다.

케데몬 오류의 무서움은 여기에 있다. 성공한 결과를 본 뒤 “애초부터 승부는 정해져 있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 그러나 역사와 시장은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다이너마이트의 성공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였고, 코로나라는 초유의 위기는 어느 기업도 장담할 수 없는 리스크였다. 결과론적 해석은 과정의 불확실성과 책임의 무게를 지워버린다.

오늘날 하이브는 음악 산업을 넘어 영화, 게임, 캐릭터 IP까지 확장하며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골든”이나 “소다팝” 같은 노래가 전 세계에서 울려 퍼질 수 있는 기반은 바로 이 과거의 모험과 불확실성 위에서 만들어졌다. 케데몬의 오류를 피하는 지혜는, 그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과거의 방시혁을 평가하려면 지금의 하이브를 기준 삼을 것이 아니라, 당시 빅히트의 불안정한 현실과 코로나라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결과를 근거로 과정을 재단하는 순간, 우리는 과거를 왜곡하고 현재의 교훈을 잃는다. 불확실성 속에서 책임을 지겠다는 리스크 테이킹, 그 자체가 오늘날 하이브가 존재하는 이유다.


따라서 방시혁 논란은 단순히 ‘속였다(이익을 챙겼다)’라는 틀로 보아선 안 된다. 케데몬의 오류를 경계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한 기업인의 결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불확실성 속에서도 책임을 감수하는 리더십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들은 단순한 흥행작이 아니라, 불확실한 시대를 뚫고 나온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박용후/관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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