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비자 어렵다" 현대차·LG엔솔 올초부터 정부에 SOS
파이낸셜뉴스
2025.09.09 08:46
수정 : 2025.09.09 10:41기사원문
현대차·LG 엔솔, 올 상반기 정부에 비자 관련 민원 접수
외교부, 유의사항 안내 수준에 그쳐 소극 행정 비판
美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서 한국인 300여명 체포·구금
[파이낸셜뉴스]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올 상반기부터 미국 비자 문제와 관련한 어려움을 정부에 전달하며 지원을 요청한 사실이 확인됐다. 두 회사가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합작공장 현장에서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이 구금되는 사태가 발생하기 전부터, 이미 이들 기업은 비자 발급과 입국 과정에서의 애로 사항을 정부 측에 꾸준히 알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외교 당국이 사전에 문제를 인지하고도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결국 한국인 근로자의 대규모 구금 사태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간사인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번 구금 사태의 직접 당사자인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상반기에 이미 미국 비자 발급 관련 민원사항을 외교부에 공식적으로 접수했다.
문제는 LG에너지솔루션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5월 30일 미국 비자 문제와 이와 관련해 입국이 거부되는 사례 등과 관련한 애로사항을 외교부에 전달했다. 다만 외교부는 비자 발급 시 유의사항과 지원 내용을 안내하는데 그쳤다. 특히 이번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 단속은 미국 당국이 수개월 동안 준비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임 정부 때부터 외교당국의 대응에 미흡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 등은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배터리회사) 건설 현장에서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단속을 벌였다. 이로 인해 LG에너지솔루션 소속 47명(한국 국적 46명·인도네시아 국적 1명)과, HL-GA 베터리회사 관련 설비 협력사 소속 인원 250여명이 구금됐다. 한국에서 출장간 인력들은 대부분 회의 참석이나 계약 등을 위한 비자인 B1비자, 무비자인 전자여행허가(ESTA)를 소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미국의 출입국 관리가 전임 바이든 정부보다 한층 엄격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불법 이민자 단속 강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강경 조치는 예견된 흐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들이 비자 발급 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했음에도 외교 당국이 사전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결국 미국 내 한국인 근로자 대규모 구금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유사한 사태가 재발할 경우 당장 미국에서 투자 보따리를 풀고 있는 기업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현대차그룹의 합작공장 건설을 중단한 상황이다. 공장 건설에 필요한 인력들이 빠지게 되면서 내년으로 예정됐던 가동 시점이 밀릴 가능성도 있다.
기업들은 내부 단속에 나서며 일단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ESTA로 출장 간 직원들을 귀국 조치하고, 단기 상용비자(B1, B2) 소지 임직원에겐 숙소에 대기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삼성전자는 이번에 문제가 된 ESTA로 출국 시 2주 안에 돌아오거나 장기 출장 시에는 주재원 비자를 받으라고 공지했고, 현대차는 직원들에게 필수 출장외에 출장을 보류하라는 권고지침을 내렸다.
재계에서는 대규모 체포·구금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인 전용 취업비자(E-4) 쿼터를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의 미국 투자가 늘고 있어서 향후에도 협력사를 비롯한 기업들의 비자 문제가 불거질 여지가 크다"며 "E-4 비자가 신설돼야 재발을 막기 위한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제조업 생산거점을 짓기 위해선 건설뿐 아니라 다양한 장비를 설치해야 하는데, 배터리 설비 제조 업체들은 일본이나 우리나라 비중이 절대적이라 현지 직원을 쓰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며 "사실 오래전부터 지적이 돼 왔던 문제인데 정책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gowell@fnnews.com 김형구 최종근 정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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