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군 키우고 무기 개발… 국난 속에서도 포기 몰랐던 선조들
파이낸셜뉴스
2025.09.10 18:39
수정 : 2025.09.10 18:38기사원문
(3)나라 위해 싸운 수군의 희생정신
고려 말 왜군 대규모로 활개 치자
수군 정규군 편성하고 방어력 강화
조선시대까지 수많은 전투 치러와
해양박물관 내달까지 활약상 전시
고려 말 왜구들이 대규모로 무리지어 우리나라 해안지역을 유린하자 고려, 조선 정부는 수군을 정규군으로 편성하고 연해 항로를 따라 촘촘히 수군진을 배치해 대비했다.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를 중심으로 한양으로 향하는 뱃길은 나라의 세곡을 운반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따라서 연해지역의 방비 및 안정적인 조운로의 확보는 나라를 운영하는데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조선 성종 대 이후부터는 수군진에 성을 쌓아 안정적인 방어가 가능하도록 했다.
미리 잘 갖추어진 수군의 힘은 군선과 군선이 강력한 화력을 갖추고 맞서 싸우는 본격적인 해전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고려 말 벌어진 진포, 관음포 해전에서 수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된 나세(羅世), 정지(鄭地), 최무선 등이 왜구의 군선들을 크게 물리쳤고, 조선 왕조가 열린 후 본격적으로 수군과 수군진을 설치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국가의 주요 전력으로 위치하게 된다.
1592년 4월, 부산으로 밀려들어 온 일본군은 부산진을 중심으로 동남해안 제해권을 빠르게 장악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조선 수군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이순신을 중심으로 경상·전라·충청 등 삼도 수군이 연합해 나라를 지키기 위한 해전을 벌이게 된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한산도·명량·노량 등이 임진왜란 때 벌어진 것으로 1592년에 치른 출전은 전라 좌·우수영을 중심으로 경상 우수영이 연합하는 형태였으며, 당포·옥포·사천·한산도 등에서 연승을 거뒀다.
특히 부산포해전은 일본군의 전초기지이자 보급선의 심장부인 부산포 일대를 직접 타격한 유일한 사례이자 임진왜란 해전 가운데 가장 큰 전과를 올렸다. 9월 1일 낙동강 하구 장림포 일대 왜선을 분멸한 것을 시작으로 화준구미, 다대포, 영도, 초량을 거쳐 부산포까지 1박 2일간 6차례의 해전에서 도합 130여 척의 왜선을 격침시켰다. 부산포 해전 이후 남해안 일대 제해권은 조선 수군이 완벽하게 장악하게 되었으며, 이순신이 가장 아끼던 장수인 녹도만호 정운을 비롯한 수십 명의 병사가 전사하는 희생을 치렀다.
전쟁사에서 승리를 가늠하는 핵심 요소는 다양한 전략, 무장, 그리고 이를 운용하는 군사들의 숙련도라 할 수 있다. 고려와 조선은 바다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군을 정식 편제로 설치하고, 군선과 화포를 개량, 발전시켰으며 끊임없이 훈련했다. 이러한 노력은 국난의 어려움 속에서도 나라를 지켜낸 원동력이 되었다.
현재 국립해양박물관에서 기획전시 '수군, 해전'이 오는 10월까지 열리며, 11월에는 해군사관학교박물관에서 특별전 '수군, 해군'(가제)을 개최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를 지킨 수군과 해군의 노력과 활약상을 되돌아보는 뜻깊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도움말=국립해양박물관 김승신 학예사
bsk730@fnnews.com 권병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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