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파고스 오명 씻어낼 때

파이낸셜뉴스       2025.09.11 19:36   수정 : 2025.09.11 19:36기사원문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생계가 달린 사람들에겐 무서운 소리입니다." 늦은 새벽, 적막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율주행 얘기를 건넨 것이 화근이었다. 의도와는 다르게 택시기사님의 심기를 거슬렀다.

요금 경쟁력을 갖춘 자율주행 택시가 도입되기 전에 대비하지 않으면 관련 종사자들의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변명'은 닿지 않았다. 차는 더 고요해졌고, 나는 집 앞보다 조금 먼저 내렸다.

택시 산업 구조조정은 예민한 이슈다. 25만명의 운수종사자의 생존권이 달려 있다. 정부는 지난 2015년 법제화를 통해 승차공유 서비스, 우버의 진입을 막았다.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도, 승합차 플랫폼인 타다도 같은 이유로 사업을 철수했다.

막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글로벌 자율주행 택시 시장의 성장률은 향후 10년간 연평균 50%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 택시 노조도 "자율주행 기술은 우리 사회에 편리함과 효율성을 가져다 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인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최근 한국은행이 구조개혁 보고서로 '택시'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은에 따르면 웨이모의 상해사고 확률이 유인택시보다 90% 가까이 낮아지는 동안, 자율주행 상용화 단계에 진입한 우리나라 기업은 전무한 상태다. 자동차 제조 강국인 한국이 자율주행 걸음마에 머물고 있는 아이러니다.

정부가 운수종사자의 퇴로를 마련해야 한다. 땜질식 여객자동차법 손질에만 전념한 지난 10년을 되풀이할 여유가 없다. 전통 택시 비중이 94%에 달하는 한국에 인건비도 거의 들지 않고 24시간 운행할 수 있는 자율주행택시가 무방비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 관건은 디테일이다. 택시면허 총량 규제 완화 등 한은의 의견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앞서 최저 매입가를 보장한 면허 매입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호주의 사례도 참조할 만하다. 특히 지방 택시기사들의 평균연령이 60세 이상의 고령임을 고려할 때, 중소도시부터 성공 케이스를 만들자는 한은의 제안을 섬세히 가공할 필요가 있다.

흔히 구조개혁을 장기전이라고 한다. 하지만 더는 시간이 남지 않은 구조개혁도 있다.
2년 전 한 경제 유튜버는 전 세계에 남태평양에 있는 진짜 갈라파고스와 온갖 규제에 사로잡힌 잘라파고스(일본), 콜라파고스(한국)가 있다고 했다. 지난해 잘라파고스마저 정년퇴직하는 택시기사를 자율주행 택시로 대체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전통 택시산업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더 숨는다면 콜라파고스 탈출은 요원하다.

eastcold@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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