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사건도 서울 로펌에 맡겨… 사람들 인식 바꾸고 싶다"

파이낸셜뉴스       2025.09.15 18:38   수정 : 2025.09.15 18:38기사원문
김신 법무법인 사이 대표변호사
대법관 퇴임 후 고향 부산으로
북항 재개발 매립지 분쟁 등
지역 법률 다툼에서 잇따라 승소
"서울 대형로펌만이 능사 아니야"
최근 법률사무소 본사 부산 이전
"지역에 양질의 법률 서비스 제공"
기관·대학교 등 자문활동도 활발

"부산에서 법적인 문제가 생겨도 규모가 조금 크거나 특별히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건이 있으면 무조건 서울에 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분들이 가까이서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했고, 본사를 부산으로 옮긴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사무실이 지역과 가까이 있으면 이용하기가 좀 쉽지 않습니까."

법무법인 사이(SAAI)는 최근 부산에서 발생한 굵직굵직한 법률 다툼에서 서울 대형 법무법인에 맞서 잇따라 승소를 이끌어내 주목받고 있다. 대법관 출신으로 고향인 부산으로 주사무소를 옮겨 법률 서비스를 펼치고 있는 김신 법무법인 사이 대표변호사를 만나봤다.

다음은 김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서울과 부산 두 곳에 사무소를 두고 법률 서비스를 해오던 '법무법인 사이'가 최근 주사무소를 부산으로 옮긴 이유는.

▲대법관을 퇴직하고 나서 변호사 개업을 하신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지만, 그 중에서도 지방에서 활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현직에 있을 때도 서울 중심이지만, 퇴직하고 나서 활동하는 분들도 대부분 서울에 집중돼 있다. 그런 점에서도 그렇고, 제 고향이라는 점도 있고 해서 부산에 대한 법률 서비스를 좀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사실 법조 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이 그렇지만, 부산, 경남 지역에 우수한 변호사들이 많이 있는데도 서울 중심으로 편중되는 것이 아쉽다. 지역 법조 발전에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1980년 사법시험 합격, 대법관 재직 7년을 빼고는 부산·울산에서만 법관생활을 하면서 민사, 형사, 행정, 파산 등 다양한 재판업무를 담당했는데.

▲판사 생활을 1983년 2월부터 시작했다. 대법관까지 하면 지난 2018년 8월까지 35년 6개월 남짓 법관 생활을 한 셈이다. 그 중에서 울산 지역 근무 이력을 빼고, 서울에서 대법관으로 근무한 기간을 제외하면 나머지 전부를 부산에서 근무했다. 경력의 시작부터 끝이 전부 부산이었다.

―최근 부산에서 생긴 크고 작은 법률 다툼에서 잇따라 승소를 이끌어내 주목받고 있다.

▲몇 년 전 부산항 북항재개발 과정에서 공유수면 매립지가 속할 지방자치단체의 결정을 두고 중구와 동구 사이 분쟁이 있었는데, 중구를 대리해서 승소로 이끌었다. 당시 동구는 서울의 대형로펌을 선임 했고, 저는 중구를 대리했다. 중구도 서울의 큰 법무법인 선임을 고려했지만 결국 지역 변호사를 통해 대응하기로 했고, 결과는 좋았다. '서울에 가는 것만 능사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쓴다. 최근 부산 기장군 오시리아관광단지에 추진 중인 문화예술타운 '쇼플렉스' 건설을 둘러싼 법적 공방에서도 서울의 대형 로펌을 선임한 부산도시공사를 상대로 승소했다.

―법무법인 사이가 현재 민·형사뿐 아니라 행정 거의 전 분야에 걸친 법률 서비스와 기관, 공기업, 대학교 등과의 업무협약을 통해 법률 자문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는데.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법관 생활을 오래 하면서 많은 법리들을 다루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은 적지 않다. 성실하고 유능한 젊은 변호사들과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면서 해 나가고 있다. 사건마다 좋은 결과물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 덕분에 우리가 제출하는 서면에 대해 의뢰인들은 물론이고 공동으로 대리, 변호하거나 원심을 맡았던 변호사들도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소속 변호사들이 더 많으면 제공할 수 있는 법률서비스의 폭도 더 넓어지고 전문성을 뾰족하게 가져갈 수 있겠다는 아쉬움도 있는데, 일단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소수 정예로 하고 있다.

―평소에 '사회적 약자들이 마지막으로 기댈수 있는 곳은 법원이다'라는 소신을 피력하고 계신데, 거기에 대해서도 좀 의미를 부여를 해주신다면.

▲많은 사건들이 그렇지만, 힘없는 국민은 법원의 도움이 없으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다. 변호사의 조력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법원 판결에 의해서 억울함이 밝혀진다. 힘있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힘을 그냥 행사하면 되지만, 힘이 없는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데, 결국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재판과 판결 밖에 없다. 법관들의 소신과 전문성이 그만큼 중요하다. 재판의 구조상 법원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고 정당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변호사들이 그 길을 잘 안내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법관생활하시면서도 봉사단체에서도 많이 활동하셨다. 기독교 단체에서도 또 역할을 하셨던데 그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고등법원에 있을 때 법원 안에 봉사단체가 있었는데, 순서가 돼서 제가 회장을 하게 된 것 뿐이다. 다만 회장을 하면서, 이왕 하는 것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하자고 해서 직원들과 함께 정말 열심히 활동했다. 기독교 모임을 통해서도 불우한 가정의 집수리를 지원한다든지, 그런 일들을 했다. 그냥 '맡으면 좀 열심히 하자' 하는 식이었기 때문에 크게 자랑하기는 좀 곤란하다.(웃음)

―동아대학교 석좌교수로 활동하면서 '청년이 묻고 대법관이 답한다'는 등 집필활동과 후학 양성에도 열정을 쏟고 계신데.

▲대법관 마치고 퇴임할 때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석좌교수로 초빙해 흔쾌히 수락했다.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일보다는 연구하는 일들을 좀 많이 하고 있다. 대법원에 있을 때 좀 관심을 많이 갖고 법리를 바르게 하려고 노력했던 분야 중 하나가 '배임죄'다. 배임죄에 관해서 기존 대법원 판결을 '전원합의체 판결'로 변경도 하고, 관련 법리를 아주 적극 주장했었다. 그래서 퇴임하고 나서 동아대에서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그 연구를 조금 더 열심히 했다. 퇴직하고 나서 동아대에서 배임죄에 관한 논문을 작성해 논문집을 출판하고, 판례 평석집도 하나 펴냈다.
퇴임 후 연구를 멈추지 않고 두 권의 책을 출판까지 했다는 것에 대해 다른 교수님들도 높이 평가를 해주고 있다. 대학교에서 종종 특강을 한다. 지역 법조 실무가들과 학계의 연계에도 이바지할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bsk730@fnnews.com 권병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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