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비전'으로 미국 설득해야
파이낸셜뉴스
2025.09.16 18:35
수정 : 2025.09.16 18:35기사원문
" 美국가채무 GDP대비 120% 넘어
유럽 강대국 佛英獨 경쟁력 상실
中 '천하경제권' 국제질서 흔들어
韓 첨단제조업과 군사력 앞세워
美日과 전략적 협력 제도화하고
北 대응 자체적 핵능력 확보해야"
2024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입 비율, 즉 무역의존도는 90%를 상회하고 있다. 그중 수출 비중은 36.6%에 이르고 있으며 에너지 수입의존도도 93.7%여서 대한민국은 국제시장과 단절되면 그냥 경제가 결딴나는 나라이다. 우리의 생존이 국제질서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외교는 곧 경제이고, 국가적 생존도 좌우한다.
패권국 미국은 1945년 이후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국제질서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왔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사정은 예전 같지 않다. 국가부채는 2025년 8월 기준으로 GDP 대비 120%를 넘어섰고, 이자비용만 연간 1조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국제질서 관리는커녕 국가부도가 났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경제를 살리고 미래산업에서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결국 동맹국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강압적으로 동맹국을 쥐어짠다고 다시 강력한 패권국이 될 수는 없다. 동맹국과 윈윈의 협력관계를 구축하여야 한다.
더욱이 미국과 함께 국제질서 관리에 2차적 리더십을 발휘해 오던 유럽의 강대국들도 더 이상 믿을 만한 강대국이 아니다. 프랑스, 영국, 독일이 국가부채와 이민자 문제로 흔들리고 있어 미국 리더십의 빈자리를 채워주기보다는 자기 살길 찾기에 전전긍긍이다.
이 와중에 중국의 민족주의적 부상은 기존 국제질서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주권을 최우선시하는 시진핑 정부는 아시아에서 일종의 배타적 '천하 경제권'을 구축하는 다극화 국제질서 비전을 내놓았고, 대만 통일 및 아시아 지역의 영토적 현상변경을 기도하고 있다. 이에 더해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인공지능 기술의 출현은 미래 시장을 중국과 미국의 거대 플랫폼으로 양분하고 있으며, 이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는 유럽의 강대국들은 국가경쟁력을 빠르게 상실하고 있다.
국가경제의 거의 전부를 국제질서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지금의 국제질서 상황을 국가적 위기 상황으로 인식해야 한다. 국제질서를 관리할 패권국과 강대국이 쇠락하고, 급변하는 혁신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면 민족주의적인 중국 앞에서 우리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현재 우리의 상황은 어찌 보면 전화위복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주요 공급망에 자리 잡은 우리의 첨단 제조업, 그리고 군사력이 대한민국을 일본과 함께 유럽 강대국의 빈자리를 메울 신흥 강대국으로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대만은 미국이 아시아에서 중국의 부상을 관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국가들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제 한국은 미국의 패권부활과 국제질서 안정을 동시에 이끌어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강대국 비전'을 미국에 제안해야 한다.
첫째, 한국은 미국·일본과 함께 전략적 협력을 제도화하여 중국의 현상변경 시도에 대응하고,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협조한다. 둘째,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반도 방위의 한국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북한 핵에 대응하는 자체적 핵능력을 최대한 확보한다. 셋째, 미국의 무리한 관세와 투자 강요는 한국과 일본에 금융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이들 국가에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가장 좋아할 국가는 중국이고, 가장 타격을 받을 국가는 동맹 관리에 실패한 미국이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의 첨단 제조업 부활과 대중국 전략에 함께하지만 한국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투자는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다급한 미국이지만 자신만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의 동맹국도 같이 강해져야 중국을 관리하고, 국제질서의 안정을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우리의 강대국 비전이 상생의 길이 될 수 있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약력 △62세 △서울대 외교학과 △위스콘신대 정치학 박사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다보스포럼 한반도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국제협력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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