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의 거래와 페이스메이커
파이낸셜뉴스
2025.09.17 19:00
수정 : 2025.09.17 19:38기사원문
"다자무대 등장한 김정은 위원장
북한 핵보유 용인 분위기 확산 속
핵·ICBM 카드 꺼내며 무력 과시
안보 우산에 안주하던 시대 끝나
동맹 정교화·전략적 공조 강화로
APEC 한미정상회담 성과 기대"
고도화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가지고도 그는 당당하게 국제무대에 등단했고, 중국 지도자들은 전과 달리 이에 대해 단 한마디 언급 없이 그를 끌어안았다.
2016년 제4차 핵실험 이후 북한에 유엔 결의에 따라 더 강력하고 폭넓은 제재를 부과해 왔던 중국도 입장을 바꿨다. 최근 눈에 띄게 관련 제재가 느슨해졌다. 중국의 용인 속에 국제사회에서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향한 북한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김정은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2019년 하노이 북미회담에서도 보았듯 제재 해제와 관계 정상화이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은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 임기 말기인 2000년 10월 조명록 국방위 부위원장을 워싱턴으로 보내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관계 정상화를 시도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주한미군이 통일 후까지 주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제된 미 외교문서는 1992년 김용순 국제부장이 이 같은 입장을 미국 측에 전달했음을 확인했다.
이란 핵시설에 벙커버스터까지 때려 넣은 도널드 트럼프도 60개 이상의 핵탄두와 ICBM을 손에 쥔 '불량국가'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 미 전역을 ICBM의 사정권 아래 둔 북한과 적대적인 관계 속에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내키지 않을 터이다. 강철 방망이를 휘두르는 안하무인의 트럼프도 "나의 친구, 김정은과 사이가 좋다"는 등 친분을 강조하며 세계 최빈국 북한 지도자의 환심을 사려는 이유도 핵과 ICBM 탓이다.
트럼프 2기에서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한미일 공동성명 등을 통해 재확인했지만 "트럼프는 북한과 관계 정상화 및 핵 군축을 원한다"는 평가가 많다. 이전 대통령들과 달리 트럼프는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불렀다. 지난해 9월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언급처럼 국제사회에서도 북한에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용인하고, 핵군축으로 관여해 나가자는 분위기가 커졌다. 김정은은 이를 통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해 왔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17일 "한반도 비핵화는 한미의 궁극적 목표이며, 그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은 엄중하다. 트럼프 1기 때처럼 존 볼턴 같은 비핵원칙 고수론자들도 트럼프 주위에서 사라졌다.
'하노이 노딜'의 쓴 경험에도 김정은의 북미 관계 정상화 의지는 여전하다. 동맹보다 거래 관점에서 이해타산을 더 중시하는 트럼프도 노벨상 수상 등의 계산 속에서 정상회담을 열망한다. '두 개의 적대국'을 선언하고 한국과 접촉을 거부하는 북한. 이 상황에서 한국을 뺀 양자 접촉과 북미 정상회담이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한국이 배제된 북핵과 한반도 문제 결정이란 화두가 우리에게 던져져 있다.
핵보유국 북한과 협상하겠다는 트럼프에게 우리 입장을 반영시키고, 동맹의 정교화와 전략적 공조를 높여가는 일에 우리의 생존과 자존이 걸려 있다. 동맹의 보호와 강대국의 안보 우산 속에 안주했던 시대는 끝났다. 이재명 대통령은 8월 25일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에게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고 했다.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 먹고사는 문제(무역협상)를 넘어 죽고 사는 문제(안보 문제) 해결에도 안정적 초석을 놓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june@fnnews.com 이석우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