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금융’은 무엇을 남길까

파이낸셜뉴스       2025.09.17 19:01   수정 : 2025.09.17 19:38기사원문



'창조경제.'

역대 정권의 경제정책 구호 가운데 이만큼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이름은 드물다.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등장한 이 구호는 창조와 과학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첨단 산업을 발전시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당시 우리 경제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정확히 짚어낸 만큼 기대도 컸다.

그렇게 10여년이 흐른 지금, '창조경제'에 대한 평가는 냉소적이기만 하다. "창조경제가 남긴 것은 전국 곳곳의 창조경제혁신센터 건물뿐"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추상적인 구호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실행계획과 성과지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창조'라는 말은 그럴듯했지만 현장에서 무엇을 창조해야 하는지, 어떤 산업을 지원할지, 성과를 어떻게 평가할지가 불분명했다.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추진된 정책은 정작 창조와는 거리가 있었고, 민간기업들은 정부 요청에 따라 형식적으로 참여했다. 제도적 지속성도 담보되지 못한 채 결국 건물만 남기고 막을 내렸다.

올해 출범한 이재명 정부도 '창조경제'만큼이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금융정책 구호를 선보였다. 이는 '생산적 금융'으로 '예대마진에 안주하지 말고, 산업과 혁신을 뒷받침하는 금융'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기서 '해석'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가 있다. 정부가 출범한 지 3개월이 넘었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아서다.

'생산적 금융'이 단순 구호로 끝나지 않으려면 몇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대상과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투자대상 업종이나 기업 규모 등이 구체화되지 못하면 한정된 자본이 방향성을 잃고 표류할 수밖에 없다. 규제완화를 통해 금융사들이 위험노출이나 수익성 부담을 덜어내고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금융권에서 위험가중치와 같은 건전성 규제 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또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되, 은행과 금융사가 스스로 수익모델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성과에 따른 보상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현장에서 동력이 생기고 정책의 지속성도 담보된다.

'창조경제'가 그랬듯 '생산적 금융'도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구호다.
그러나 구호로 그쳐서는 안 된다. 실행 전략과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될 때 정책은 성과를 낼 수 있다. 건물만 남은 허망한 구호로 끝난 창조경제의 전철을 밟을지, 아니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뒷받침하는 금융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을지는 지금부터의 선택에 달렸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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