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보다 우려가 큰 금융감독체계 개편
파이낸셜뉴스
2025.09.18 18:45
수정 : 2025.09.18 18:45기사원문
정부와 여당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금융감독의 독립성 확보, 금융소비자 보호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관치금융이 더 강화되면서 금융감독 독립성이 후퇴하고, 되레 금융소비자 보호가 뒷걸음칠 것이라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5일 '금융감독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법률'(금감위 설치법) 등 정부조직 개편에 필요한 법안들을 대표 발의했다.
'시어머니'가 둘(금융위·금감원)에서 넷(재경부·금감위·금감원·금소원)으로 늘어나는 만큼 금융회사들이 치러야 할 대가가 적지 않다.
첫번째가 '옥상옥' 규제다. 금소원은 금감원에서 떨어져 나온 영업행위, 즉 금융상품 판매·광고 등에 대한 검사·제재권을 갖는다. 정부와 여당이 금소원 신설 이유로 '소비자 보호 강화'를 외치고 있지만 금융권은 차가운 반응이다. 오히려 감독 수위가 높아지고, 기관 간의 역할조정이나 협업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크나큰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금감원과 금소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경우 '관치금융'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금감원과 금소원이 업무 확장 경쟁을 벌이고, 대형 금융사고가 터지면 재발 방지를 명분으로 삼아 서로 '몸집 키우기'에 나설 우려도 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건전성 관련 내용과 영업행위에 관한 내용을 분리해서 보고해야 하나. 구분하기 힘드니까 금감원과 금소원 양쪽에 모두 보고하라고 할 것이 뻔하다"고 말한다. 금융당국 내에서도 "법적으로 금감위가 두 기관의 검사 영역이 겹치지 않도록 조율할 수 있도록 했으나 현장에서 중첩되는 경우는 다반사일 것"이라며 "건전성·영업행위 규제는 맞물려 돌아갈 때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일각에서는 '자리 늘리기'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금감원의 임원은 원장과 부원장 4명, 부원장보 9명 등 모두 14명이다. 조직개편 후에는 금감원 12명, 금소원 5명의 임원을 두게 된다. 금감위 산하에 새로 생기는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는 위원장과 상임위원 등 5명으로 구성된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들의 비용 부담은 훨씬 커진다. 현재 금감원의 예산 대부분이 금융회사가 부담하는 감독분담금인데 이대로 조직개편이 이뤄지면 금융회사들의 분담금이 적게는 1000억원, 많게는 1200억원가량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층층시하(層層侍下)'에 살게 된 것도 억울한 판에 돈까지 더 내야 하니 금융회사 입장에선 이보다 더한 '비효율'이 없다. 그리고 이렇게 늘어나는 비용은 어떤 식으로든 결국 금융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 뻔하다.
영국은 지난 2012년 단일 금융감독기관이던 금융서비스청(FSA)을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감독하는 건전성감독청(PRA) △영업행위 규제 및 소비자 보호 기능을 맡는 금융규제청(FCA)으로 쪼갰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훌쩍 지난 올해 상반기 영국 의회는 그간의 성과에 대한 분석을 내놨다. 금융회사의 부담만 커지고, 산업 경쟁력은 뒷걸음쳤다는 내용이다. "여러 기관이 중첩된 감독 업무를 하고 있어 금융사들이 갈피를 잡기 어렵다" "각각의 감독기관이 요구하는 요건이 중복적이거나 모순적이어서 금융사 영업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들이 제기됐다.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닥쳐올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왜 해야 하는지 공론화하는 과정이 빠졌다는 점이다. 금소원이 생기면 정말 금융소비자들에게 좋을지, 어디서도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여당이 힘의 우위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조직개편 시기를 못 박고 끌고 갈 일이 아니다. 멀리 내다보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함께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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