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비핵화 포기' 전제로 손짓… 트럼프, 북미대화 응할까

파이낸셜뉴스       2025.09.22 18:07   수정 : 2025.09.22 18:26기사원문
트럼프, 내달 APEC 참석차 방한
美, 사찰·검증·이행 선행 요구할듯
회담보다 실무접촉 성사가 분수령
李대통령도 단계적 비핵화 재확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이 비핵화 집념을 버리면 마주 설 수 있다"며 '비핵화 포기'를 전제로 북미 대화 테이블에 앉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내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예정돼 있어 전격 북미 정상회담 성사 여부가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이재명 대통령도 외신 인터뷰에서 북핵 '동결'을 "비핵화로 가는 잠정적 응급조치"로 규정하면서 한국의 '가교' 역할을 강조했다.

남북이 동시에 '비핵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미중 정상이 참석하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재명 정부가 '북핵 해법'의 돌파구를 마련할지 주목된다. 다만 야권은 이 대통령의 "북핵 동결이 현실적"이라는 입장에 대해 "사실상 핵 보유 용인"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APEC 전후 실무접촉이 분수령

22일 정치권과 외교가에 따르면 정부는 "최종 목표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원칙을 재확인하고 북미대화 여건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경주 APEC 전후 실무접촉 성사가 분수령으로 거론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비핵화는 없다"고 못 박았다. 동시에 "트럼프와의 개인적 신뢰"를 언급해 북미 직거래 여지를 남겼다. 한국에 대해선 "일체 상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두 개 국가' 헌법 명시 방침도 재확인하며 대화의 창을 미국으로 좁히는 '통미봉남'을 공식화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3단계 비핵화론'의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장기적 비핵화 목표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핵 추가 생산을 멈추는 동결의 실익을 강조했다. 안보 공조와 투자·관세 문제는 분리해 관리한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동결→군축→완전한 비핵화'의 접점을 찾겠다는 구상이다. 한미일 공조는 유지하되 북중러 밀착으로 높아진 긴장은 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야권은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이 사실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했다. 김정은은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영원히 불가능한 길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며 "만약 미북 간 핵 군축협상이 본격화된다면 미국은 북한의 일부 핵 위협을 줄이는 대가로 '한미연합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대북제재 완화'와 같은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외교가에선 "APEC 계기로 '의제 조율→특사 왕래'가 먼저 이뤄지지 않으면 전격 정상회담은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美, 검증·상응조치 선행 요구

전문가들은 관전 포인트로 '시기·명분·형식'을 꼽는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유엔 총회 국면을 겨냥한 제재 완화 여론 만들기"라며 "트럼프의 즉각적 성과 창출이 쉽지 않아 (북미 정상회담의) 내년 (개최) 시나리오가 현실적"이라고 했다. 한국 정부는 "원칙적 비핵화를 분명히 하며 (한국) 패싱을 막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른 안보 전문가는 "대미 메시지는 열어뒀지만, 연합훈련·주한미군·제재완화 같은 상응조치는 미국이 수용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설령 만남이 성사돼도 트럼프 임기 내 결론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국내적으로는 "긴장완화와 억지력을 병행하되 목표를 선명히 해야 한다. '유화 제스처+군비 증강'의 이중 노선은 효과를 깎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미 회담의 관건은 미국의 선택과 시간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결렬을 의식해 동결의 사찰·검증·이행 타임라인을 우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제시한 '단계적 비핵화'가 협상 틀로 수용되면 초기 패키지는 영변·풍계리 동결과 사찰 재개, 미사일 시험 중단 같은 가시적 조치가 될 전망이다. 상응조치로는 제한적 제재 예외, 인도적 지원, 연합훈련 조정이 거론된다.

국내정치 리스크도 크다. 동결의 명분(확산 억제·시간 벌기)을 국민에게 설득해야 한다. '핵 보유 기정사실화' 비판도 관리해야 한다. 대남 비난 공세 속 남북관계 파탄 이미지를 줄이는 일도 숙제다. 여기에 한미 관세·투자 해법과 조지아 구금사태 후속조치가 얽히며 대미 관계 관리의 난도도 높아졌다.

외교가에선 경주 APEC 행사 전후 상징적 만남의 여지는 인정하면서도 성사 조건이 까다롭다는 평가다. 의제 조율과 특사 교환, '검증 가능한 동결+상응조치' 초안 한일의 안보 우려 반영이 선행돼야 한다. 미국은 사찰·검증·이행의 시간표를 요구할 공산이 커 전격 회담보다는 실무접촉을 거친 단계적 이벤트가 유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결국 이번 국면은 '비핵화 로드맵'의 재설계 시험대라고 보고 있다. 한국이 최종 목표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원칙'과 동결의 즉시 효과라는 '현실' '국익'을 동시에 세우는 균형점을 찾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APEC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북미의 명분 설정과 한국의 가교 역할의 정교함이 성패를 가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west@fnnews.com 성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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