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의 정치를 경계하며
파이낸셜뉴스
2025.09.22 18:07
수정 : 2025.09.22 19:16기사원문
찰리 커크 암살의 원인은
상대를 악마화 하는 정치
보수와 진보 극단적 대립
검찰 해체, 특별재판부 등
與, 위헌논란 무시한 강행
정치 살릴 길은 국민 각성
"폭력과 살인은 날이면 날마다 최대한 증오감을 부추기고 경멸적인 방법으로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악마화해 온 데 따른 비극적인 결과입니다." 지난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발표한 메시지의 일부이다. 전날 암살된 보수주의 청년운동가 찰리 커크를 추모하는 자리였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도 있지만 이 부분만은 동의한다. 커크는 2012년 18세의 나이에 '터닝포인트(Turning Point USA)'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해온 인물이다. 개인의 자유, 작은 정부, 정부의 재정적 책임 등 보수주의 이념에 기반을 둔 활동으로 시작했지만 이민자·낙태·동성애 반대 등과 결합하며 일부에서는 그를 극우로 낙인찍기도 한다. 22세의 타일러 로빈슨이 커크를 암살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탄피에 새겨진 '안티파(반파시스트 운동)' 문구 등을 보면 로빈슨이 커크와 반대되는 이념에 빠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상대를 극우 혹은 극좌로 낙인찍는 극단적 대립이 비극을 낳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찰리 커크 암살을 계기로 본 극단화된 미국의 비극이다. 극단에 대한 보상이 과거보다 커진 것은 우리도 다르지 않다. 절대다수 의석과 행정부를 장악한 여당은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을 넘어 검찰청 해체를 목표로 폭주하고 있다. "검찰 없으면 나라 망하냐?"는 막말로 검찰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내는 국회의원도 나온다. 일국의 대법원장에 대해 가짜뉴스를 들이대며 수사받으라, 사퇴하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삼권분립 위반이라는 숱한 경고에도 여당 입맛대로 특별(전담)재판부 설치를 밀어붙인다. 모처럼 협상을 통해 여야 합의를 이끌어낸 여당 원내대표에게는 강성 지지층의 질타가 쏟아지고, 당 대표와 대통령까지 나는 몰랐다며 손절하는 촌극이 벌어진다. '정치무당'이란 별칭을 가진 유튜버의 영향력은 대통령을 능가한다는 믿기 어려운 말이 떠돈다.
써놓고 보니 이상하다. 강성 정치인, 음모론자 유튜버는 국민을 떠나 진공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닌데 말이다. 막말을 일삼는 정치인에게 지지를 보내고, 저질 유튜버에게 후원을 하는 게 곧 국민이 아닌가 말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정치의 수준은 유권자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유타주의 스펜서 콕스 주지사는 커크 피격사건 이후 이렇게 말했다. "로그아웃하고, 컴퓨터 전원을 끄고 밖으로 나가 잔디를 가꾸고, 가족들과 포옹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선행을 베풀어라." 조금 바꾸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유튜브에서 눈을 떼고,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참여하라"고 말하고 싶다. 선스타인은 '이종교배'라는 처방을 내놓고 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내 집단 극단화가 원인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동질성이 강한, 이른바 '라이벌 아닌 사람들의 팀(team of unrivals)'으로 구성됐다. 반대 의견은 충성심 부족으로 간주됐다. 특정 사고를 공유하는 집단이 의사결정을 좌우할 때 생기는 정책 실패의 전형이다." 반면 링컨 대통령의 성공은 건강한 '라이벌들의 팀(team of rivals)' 덕분이라고 선스타인은 강조한다. "링컨은 자기 생각에 이의를 달 수 있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을 검토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 조직 내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집단 극단화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우리는 총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말로 안도할 때가 아니다. 내 속에, 내 집단 속에 움트는 악마에게 계속해서 먹이를 줄지 말지도 결국 우리의 선택이라는 각성이 중요하다.
dinoh7869@fnnews.com 노동일 주필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