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틸법 통과 서둘러야

파이낸셜뉴스       2025.09.22 18:27   수정 : 2025.09.23 13:14기사원문

미국 피츠버그, 영국 셰필드, 일본 기타큐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 지역은 한때 번성했으나 대표 제조업인 철강산업의 쇠락으로 불황을 맞은 이른바 '러스트 벨트', 녹슨 지역이다. 그런데 이 반갑지 않은 이름이 우리나라에도 수입될 조짐이다. 국내 철강 대기업조차 수익성이 급락하면서 수년 후에는 포항과 광양도 한국의 러스트 벨트로 이름을 올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여야 의원 106명의 초당적 협력으로 발의된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은 반가우나 그만큼 철강산업의 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실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면서 철강산업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은 철강 패권 탈환과 탄소경쟁력 선점을 위한 전폭적인 지원에 돌입하면서 마치 국가대항전을 연상케 하는 형국이다. 미국은 제철산업을 자국으로 유치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철강산업 현대화법'을 통해 정책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 철강제품에 50%의 고율관세를 부과했고, 철강 파생상품으로까지 그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EU는 '철강금속 행동계획'을 통해 유럽 철강산업의 국제경쟁력과 기후중립 전환, 양질의 일자리 확보를 위한 종합 실행전략 추진에 나섰다. 일본 역시 GX(Green Transformation) 전략하에 수소환원제철 지원금을 대폭 늘리고 친환경설비, 그린스틸 등에 세제혜택을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철강산업은 이제 기업 간 경쟁을 넘어서 국가 간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개발 시대처럼 시장 자율이 아닌 정부가 선수로 나서서 뛰는 시대가 된 것이다. 철강산업에 주요 국가들이 공을 들이는 것은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제조업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선진국들은 금융·정보기술(IT)·첨단산업 위주로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제조업을 대규모로 수용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제조업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제조업이 국가경쟁력의 뿌리임을 재인식했기 때문이다. 제조업을 완전히 잃은 지역은 러스트 벨트 사례에서 보듯 중산층 붕괴, 지역 불균형, 고용 불안정이 심화되는 경향이 생긴다. 특히 철강은 자동차, 조선, 건설, 기계, 가전 등 거의 모든 제조업의 핵심 원자재일 뿐 아니라 철광석, 석탄, 운송, 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에서 철강산업을 위한 투입재가 필요한 만큼 다른 산업에 대한 전후방 연관효과가 매우 큰 기초소재산업이다.

우리나라 최대 철강도시인 포항은 인구 약 50만명 중 상당수가 철강산업 및 관련 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의존한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인구가 약 2만8000명 감소했고, 청년층 이탈도 심각하다. 주요 철강사의 공장폐쇄와 일부 설비 가동중단으로 직접 고용인원이 줄었고, 중소협력업체 가운데 상당수는 경영난을 겪으며 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 이로 인해 지역 내 소상공인 매출도 감소해 지역 전반에 경제침체의 악순환이 고착화되고 있다. 전례 없는 복합위기 도래로 산학 전문가들은 K-스틸법을 생존의 변곡점에 선 한국 철강의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9일 열리기로 했던 여야 민생경제협의체 첫 회의가 하루 전 돌연 취소됐다.
앞서 12일 국회에서 열린 'K-스틸법 발의, 그 의미와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대거 참석해 이달 안으로 K-스틸법이 통과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것을 생각하니 역시 의원들은 민생보다는 당리당략이 우선인가 하는 허탈감도 든다.

철강 위기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강력하고 통합적인 국가전략이 필요하다며 K-스틸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던 두시간을 의원들은 기억해주길 당부한다. 녹슬지 않을, 러스트 프루프(Rust-proof) 미래를 위한 전략 수립에 나설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padet80@fnnews.com 박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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