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보다 빛나는 명품 인간관계
파이낸셜뉴스
2025.09.24 12:10
수정 : 2025.09.24 12:1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젊은 시절, 인간관계에 대한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은 보석 같은 문장을 만났다. “나를 도와줄 사람의 숫자는 내가 도와준 사람의 숫자와 같다.” 일본 작가 나카타니 아키히로의 이 말은 인간관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내 기준을 세워 주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명품(名品)은 값비싼 물건을 가리키지만, 진짜 명품은 단순한 희소성이나 가격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장인의 정신, 세심한 손길, 시간이 켜켜이 쌓아 올린 깊이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명품이 된다. 결국 명품이란 물질의 완성도를 넘어, 그 안에 담긴 인간의 마음과 철학을 뜻한다.
나는 안재욱의 ‘친구’라는 노래를 특히 좋아한다. “괜스레 힘든 날 턱없이 전화해 말 없이 울어도 오래 들어주던 너!”라는 가사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지고, “세상에 꺾일 때면 술 한잔 기울이며 이제 곧 우리의 날들이 온다고”라는 대목에서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붙잡을 힘을 얻었다. 그래서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랐다. “눈빛만 보아도 널 알아.” 이 말이 어색하지 않은 관계가 내 삶에 가득하기를 바랐다.
표면적인 친절은 쉽게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신뢰를 지탱하지 못한다. 관계의 본질은 작은 노력의 반복과 진심이 담긴 태도에 있다. 대수롭지 않게 나눈 대화, 끝까지 지켜낸 약속, 상대를 향한 겸손한 마음이 쌓여 관계는 단단해진다. 마음은 정직해서 말과 행동에 담긴 무게를 금세 읽어낸다. 꾸며낸 마음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진심은 시간이 갈수록 드러난다.
명품 제품이 장인의 손길을 거쳐 천천히 완성되듯, 명품 관계 역시 일상의 꾸준한 실천 속에서 자라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배려, 불편을 감수하며 건네는 도움, 침묵 속에서 지켜주는 신뢰가 관계를 지탱한다. 관계를 명품으로 만드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성실하게 반복된 일상의 쌓임이다.
여기서 명품과 관계의 차이가 하나 있다. 명품 제품은 언젠가 닳고, 낡고, 결국 사라진다. 물질은 시간 앞에서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명품 관계는 다르다. 진심으로 맺어진 관계는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남는다. 함께한 시간은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관계의 흔적은 물질보다 오래 남아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좋은 관계는 한 개인을 넘어 세대를 잇는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신뢰, 친구 사이의 우정, 동료 간의 존중은 새로운 관계로 이어져 사회를 단단히 묶는다. 관계 속에서 나눈 진심은 새로운 만남의 토대가 되고, 세상을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된다.
결국 가장 오래가고 가장 귀한 명품은 물질이 아니라 관계다. 제품은 소유의 기쁨을 줄 수 있지만, 관계는 존재의 의미를 일깨운다. 물건은 시간과 함께 사라지지만, 관계는 기억과 이야기 속에서 빛을 잃지 않는다. 삶의 마지막 순간 남는 것은 가진 물건이 아니라 함께한 사람들의 마음이다. 관계를 가꾸는 일은 단순한 생활의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과 맺는 가장 근원적인 창조다.
박용후 / 관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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