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미디어에는 마크 톰슨이 없다
파이낸셜뉴스
2025.09.28 18:43
수정 : 2025.09.28 20:28기사원문
언론의 사명과 디지털 혁신을
성공시킨 인물 우리에겐 없어
유튜브·AI 저널리즘시대에도
기자의 발걸음, 글, 입을 통해
최고수준 뉴스 만들어지는데
스스로 역량 과소평가 말아야
8년간의 BBC 사장 시절(2004~2012년) 그의 화두는 단연 디지털 변혁(Digital Transformation)이었다. 그러나 그의 임기 중 성과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2004년 당시 연간 약 120파운드(약 29만원)이었던 거대 공영방송 BBC의 가구당 수신료는 오히려 혁신의 독이었다. 충분한 공적 재원이 확보된 거대 공영 조직이 변화와 혁신에 그리 갈급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톰슨의 BBC 혁신을 예의 주시한 인물은 당시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던 뉴욕타임스의 소유주 설즈버거였다. 톰슨은 그가 런던의 공영방송에서 만개하지 못했던 꿈을 뉴욕의 대표적 신문 뉴욕타임스의 사장(2012~2020년)으로 다시 펼칠 기회를 잡았다. 그가 회사 내·외부의 현업 전문가들과의 진지한 대화를 바탕으로 만든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Innovation Report 2014)는 뉴욕타임스 혁신의 로드맵이었음과 동시에,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미디어 혁신 사례다.
지금 톰슨의 또 다른 도전은 24시간 뉴스전문채널 CNN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2023년 CNN의 소유주 워너 디스커버리가 전격 영입한 톰슨은 이제 미국의 민간 텔레비전 뉴스 산업에서도 시청자의 신뢰와 재정적 지속가능성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겠다.
국내 미디어산업 전문가들과의 대화에서 톰슨은 전통적인 뉴스 개념의 재정립을 얘기했다. 시대가 바뀌어도 최고 수준의 저널리즘의 가치, 즉 가장 신뢰할 만한 뉴스의 가치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 본질은 유튜브 인플루언서의 시대에도, AI 저널리즘 시대에도 결코 바뀌지 않는다.
최고 수준의 뉴스는 기자의 발걸음, 글, 입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문제는 일선의 취재기자들도 미디어산업도 이에 대한 믿음이 지극히 위축되었다는 점에 있다. 기자와 미디어가 스스로의 역량을 과소평가한다면 어느 누구도 이를 선뜻 따라 나서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톰슨은 전통적인 뉴스 개념의 확장을 강조했다. 독자, 시청자는 고난도 정치, 경제, 사회문제에 대한 최고의 지식, 평론, 처방을 언론에 요구한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유튜브 인플루언서의 자극적 선동에 귀를 기울이는 듯 보이는 시청자도 결국 궁극적 해결자인, 신뢰할 만한 미디어를 찾게 된다. 이들을 위해 천천히, 그러나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차분하게 얘기하는 뉴스가 필요하다. 유튜브, AI와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미디어가 필요하다.
필자의 관점에서 톰슨의 교훈은 유연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에 기반한 미래 비전이 미래 미디어의 원동력이라는 점이다. 방송3법과 언론의 징벌적 손해배상과 같은, 고도로 정치화된 규제 일변도 정부 정책은 자유와 책임을 바탕으로 하는 저널리즘의 본질, 나아가 미디어산업의 창의력 넘치는 미래 비전에 큰 해악이다. 국민과 인류에 유익을 주는 미디어와 언론의 더 큰 비전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 시기에, 우리에게는 마크 톰슨이 없음이 매우 아쉽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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