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와 살고 있나요?"... 생활동반자법, 가족의 확장인가 전통의 해체인가
파이낸셜뉴스
2025.10.05 07:00
수정 : 2025.10.05 07:00기사원문
1인가구·비친족가구 증가..가족의 정의·범위 확대
용혜인 의원, 제22대 국회서 '생활동반자법' 발의
가족 붕괴·동성혼 등 우려... 반대 분위기 우세
李대통령 "인권 문제 관심 갖겠다" 법안에 눈길
"사회적 문제 야기시킬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파이낸셜뉴스 ] "1인 가구는 가장 보편적 가구 형태로 자리잡았고, 110만 명이 넘는 국민이 법적 가족이 아닌 친구, 연인, 동료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가족의 정의를 실질적으로 확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지난 3일 제 22대 국회에서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생활동반자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는 성년인 두 사람이 상호 합의로 생활을 공유하고 돌보는 관계를 '생활동반자'로 규정,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법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비혼·비혈연가구(비친족가구)는 10년 새 3배가까이 늘었다. 2015년 21만4421가구(47만1859명)에서 지난해 58만413가구(123만2483명)로 증가했다. 이처럼 최근 한국사회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있으며, 성애적 파트너들의 동거는 물론 친구와 공동체 기반 주거 형태도 가시화됐다.
'전통'
현행 민법 제779조는 가족 범위를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로 규정한다.
가족의 정의, 범위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하는 것과 달리 관련 법제도는 여전히 ‘전통’을 고집한다. 민법 제779조는 지난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될 때 같이 없애기로 논의됐지만 가족 해체 우려를 이유로 그대로 남았다. 이로 인해 비친족가구는 의료, 주거, 사회서비스에서 밀려나거나 제외됐다. 용 의원은 "전통적 가족 중심의 낡은 법과 제도는 현실의 가족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 가족의 존엄을 폭넓게 보장하려면 정책의 근본적인 틀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외 선진국에서는 일찍이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했다. 프랑스는 1999년 결혼을 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동거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팍스(PACs·시민연대계약)’를 도입했다. 덴마크는 1989년 동반자 관계를 법률적으로 보호하고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본의 경우 2015년 도쿄도 시부야사구가 최초로 동성 간의 생활공동체를 혼인과 같은 수준으로 보는 ‘파트너십 증명제도’를 만들었다. 미국은 '가족의료휴가법'을 통해 가족의 개념을 배우자와 자녀, 부모를 넘어 선택된 가족까지 확장했다. 이외 스웨덴, 캐나다,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 등 여러 국가에서 생활동반자가 사회적·법적으로 차별 받지 않도록 관련 장치를 마련했다.
'폐기'
물론 국내에서도 가족 제도를 변화하려는 움직임은 있었다. 지난 2014년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률안을 마련했으나 발의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무산됐다. 또 2023년 21대 국회에서는 용 의원이 생활동반자법을, 같은 해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가족구성권 3법을 발의 했지만 논의 없이 폐기됐다.
그러다 최근 용 의원이 22대 국회에서 해당 법률안을 재차 발의하며 입법 논의에 불을 붙였다.
다만 국민 여론은, 반대 분위기가 우세하다. 기독교와 시민단체 등은 ▲전통적 가족제도 해체 ▲동성혼 합법화 ▲혼인율 및 출산율 급감 ▲ 사생아 증가·입양 문제 등 후폭풍을 우려, 해당 법률안을 규탄했다.
용 의원이 생활동반자법 제정 이유로 ‘팍스’ 사례를 든 것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들 단체는 “팍스는 법적 권리는 혼인과 유사하면서 계약 및 계약의 해지에 드는 비용은 혼인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장점 때문에 이성 커플 사이에서 대중적인 제도로 자리 잡은 것”이라며 “그 결과 프랑스의 혼인은 2019년 22만5000건으로 20년 전보다 23% 줄었다”고 지적했다. 팍스 도입 전인 1999년 42.7%였던 혼인 외 출산율이 2021년 63.5%로 오르는 등 사생아가 급증하는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일부 국가에선 제도 도입 후 혼인율 급감과 가족 해체, 혼외 출산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 뒤늦게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특히, 동성혼를 염두해 둔 법안이란 지적이 많았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생활동반자법이) 커다란 변화를 제안하고 있어 아직 우리 사회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권리에는 의무가 있다. 대한민국 법률이 혼인한 사람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건, 가족관계가 갖고 있는 의무에 대한 비례성 때문”이라며 “이 법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동성혼을 인정할 준비가 돼 있는지, 가족이 아닌 생활동반자 관계를 통해서 가족에게 부여됐던 혜택을 주는 것이 대한민국 공동체 운영에 맞는 건지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전문가 역시 “서구의 경우 생활동반자법과 같은 제도가 만들어지고 나서 몇 년 후에 예외 없이 동성 결혼이 합법화됐다”며 “이뿐 아니라 남녀가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면서 사생아 비율이 높아졌고, 이에 따른 여러 가지 부수적인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걱정했다.
'불씨'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혀 법안 통과에 대한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한발짝 나아갈 수 있는 불씨는 켜졌다. 제22대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을 추진할 거란 관측이 나온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차별금지법 관련 발언 도중 “생활동반자법은 이전 대선 때 우리가 공약했던 것 같기도 하다”며 “이런 인권 문제들도 관심을 가져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해당 법안에 관심을 보이며 정부·여당이 입법에 힘을 실을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도 긍정적 검토를 예고했다. 생활동반자법을 포함 강간죄 개정,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 젠더 관련 의제에 대해 “전문가, 당사자, 관계 부처가 다양한 의견을 함께 논의할 공론의 장을 마련해 최선의 방안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일부 단체도 생활동반자법 재발의를 환영했다.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은 논평을 통해 “이번에는 국회가 법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를 거쳐 제정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며 “성별과 성적지향에 상관없이 모든 가정공동체가 존엄한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 역할을 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합의'
‘정상가족’이라는 틀을 요구하는 한국사회에서 제도권 밖의 삶을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짐에 따라 이를 뒷받침할 제도는 마련돼야 한다. 그렇다고 생활동반자법이 무조건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는 없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부작용이 발생, 또다른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를 꾀하려는 움직임은 반갑지만,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충분한 대화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야 한다.
-찬성 : ▲ 다양한 가족형태 인정 ▲ 법적 보호 ▲ 사회적 고립감 해소 ▲ 삶의 만족도 상승 등
-반대 : ▲ 전통적 가족제도 해체 ▲ 동성혼 합법화 ▲ 혼인율 및 출산율 급감 ▲ 사생아 증가, 입양 복리 저해 ▲ 법제도 오남용 등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우리나라 세 집 중 한 집은 '나홀로 사는' 1인가구라고 합니다. [혼자인家]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혼자인가]를 편하게 받아보시려면 기자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gaa1003@fnnews.com 안가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