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일자리 망가질거 뻔한데, 안할수도 없다?"...李정부 'NDC 딜레마' 풀까

파이낸셜뉴스       2025.10.11 06:00   수정 : 2025.10.11 06:00기사원문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내달까지 유엔 제출
'기후 리더십 vs 산업 현실' 사이 고통스러운 줄타기
정부, 오는 14일 대국민 토론회 열어 최종안 만들듯



[파이낸셜뉴스] 2025년 유엔(UN) 제출을 앞둔 우리나라의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수립이 딜레마에 직면했다.지구 온도 상승을 1.5°C 이내로 억제해야 한다는 과학계의 강력한 경고와 국제사회의 리더십 요구, 그리고 제조업 중심의 국내 산업 구조와 경제적 현실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35 NDC는 2050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목에서 한국의 기후 대응 의지를 가늠할 핵심적인 중간 목표다.

하지만 그 목표치를 설정하는 과정은 단순히 숫자를 정하는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 경제와 사회 구조를 재편하는 고통스럽고 복잡한 방정식이 되고 있다.

환경적 당위성 vs. 경제적 현실


11일 정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35년 NDC를 2025년 11월까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해야 한다. 이는 브라질에서 열릴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 이전에 제출해야 하는 국제적 권고 시한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1.5°C 목표 달성을 위해 2035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60% 감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국제사회에서 '기후 악당'이라는 오명을 벗고 선진국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려면, 과학적 권고에 부합하는 높은 수준의 목표 설정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이미 NDC 상향 의지를 공공연하게 드러낸 상황이다. 앞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1일 기후부 출범사를 통해 “2035 NDC는 진전의 원칙, 헌법에 명시된 국민 환경권, 미래 세대의 지속 가능한 삶을 고려해 책임 있는 목표를 설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후부는 오는 14일 2035년 NDC 대국민 공개 논의 종합 토론회를 개최하고 최종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가 온실가스 배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중후장대 산업은 단기간에 저탄소 구조로 전환하기 매우 어렵다. 과도한 감축 목표는 곧바로 생산 비용 증가로 이어져 수출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생산기지가 해외로 이전되는 '산업 공동화'와 '탄소 누출'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산업계 전반에 팽배하다. 결국 '미래를 위한 감축'이 '현재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모순적 상황에 놓인 것이다.



'미래 기술' 의존과 '현재 기술'의 한계


NDC 달성 전략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미래 기술'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딜레마를 안고 있다. 현재 논의되는 감축 시나리오들은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그린수소, 암모니아 혼소 발전 등 아직 경제성과 효율성이 입증되지 않은 기술들의 성공을 전제로 짜여 있다. 이 기술들의 상용화가 계획보다 늦어지거나 비용 문제로 확산되지 못할 경우, NDC 목표는 '희망 고문'에 그칠 수 있다. 이는 정책 목표 달성을 불확실한 미래에 거는 위험한 도박이라는 비판을 낳는다.

실제 CCUS는 포집 비용이 매우 높고, 대규모 저장소 확보 및 안전성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를 줄이고 전기차를 늘리겠다는 계획도 더디다. 2025년 상반기 기준 누적 등록된 전기차는 약 77만 대에 불과하다. 이는 2030년까지 420만 대 보급 목표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치다. 특히 2021년 이후 전기차 증가율은 매년 급격히 둔화되고 있어, 현재 추세로는 목표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가장 확실한 대안인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역시 문제에 직면해 있다.불안정한 간헐성, 부족한 전력망, 입지 선정 과정에서의 주민 수용성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가용한 기술만으로는 가파른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현실이 '미래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의 이상 vs. '사회적 갈등'의 현실


온실가스 감축 과정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비용과 고통을 수반하며, 이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라는 또 다른 딜레마를 제기한다. 석탄화력발전소의 조기 폐쇄는 감축의 핵심 수단이지만, 이는 해당 지역 경제의 붕괴와 수많은 노동자의 실직을 의미한다.

당장 이재명 정부는 한국전력 산하 발전 공기업 5개사에 대한 통폐합과 이에 따른 구조 개편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여기에 발맞춰 재생에너지 공기업 신설론마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발전소 운영에는 인력이 거의 필요하지 않아 기존 석탄·가스 발전 인력의 대규모 고용 승계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향후 인력 감축에 대한 발전공기업 노조의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들에게 충분한 대안과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지 못하는 전환은 '정의롭지 못한 전환'이 될 수밖에 없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도 우려된다. 2025년 기준 발전원별 전력 생산단가를 살펴보면 석탄화력이 킬로와트 시(kWh) 당 75~95원으로 △태양광 129.1원 △육상풍력 164.6원 △해상풍력 285.4 보다 1.5~3배 가량 저렴하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전기요금 등 에너지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이는 소득이 낮은 에너지 취약계층과 중소기업에 직격탄이 되어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기후 정책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2035 NDC 설정은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국내 산업의 연착륙을 유도하고, 기술 혁신을 촉진하며, 전환 과정에서 소외되는 이들을 보듬어야 하는 복잡한 과제를 안고 있다"며 "남은 시간 동안 폭넓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 딜레마를 얼마나 현명하게 풀어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기후·환경과 에너지는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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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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