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의 주범' 간염, 간수치 정상이라고 안심하면 안돼요

파이낸셜뉴스       2025.10.17 04:30   수정 : 2025.10.17 04:30기사원문
간암환자 80%는 B형·C형 간염이 원인
백신·조기진단으로 예방·완치 가능
혈액검사 정상이라도 간 손상될 수 있어
위험군은 초음파·바이러스검사 병행을
일상에선 개인위생 강화·금주 등 필수



국내에서 간암은 여전히 가장 치명적인 암 중 하나다. 보건복지부 중앙암등록본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간암은 전체 암 가운데 7위를 차지했으며 사망률로만 보면 상위권에 속한다. 간암은 한 번 발병하면 여러개의 종양이 동시에 발생하거나 다른 장기로 쉽게 전이되는 특성이 있어 예후가 좋지 않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간암의 대부분은 예방 가능한 간염에서 시작된다"며 조기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간암의 주범은 간염…특히 B형과 C형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 간암의 주요 원인은 바이러스성 간염, 그중에서도 B형과 C형 간염이다. 간암 환자의 약 60~70%는 B형 간염, 약 10%는 C형 간염이 직접적 원인으로 보고된다.

B형 간염은 혈액이나 체액, 성접촉을 통해 전파되는 감염병이다. 1995년 국가예방접종사업 도입 이후 유병률이 크게 감소했지만 아직도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성인층에서는 감염 위험이 남아 있다.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소화기내과 김성은 교수는 "B형 간염은 백신으로 예방이 가능하기 때문에,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성인은 반드시 항체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 시 접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형 간염은 혈액을 매개로 전파되며 오염된 주사기나 비위생적인 시술(타투, 반영구 화장, 피어싱 등)을 통해 감염될 수 있다. 문제는 감염자의 절반 이상이 증상이 없고, 감염 사실을 모른 채 수십 년을 지내다 만성 간염이나 간경변, 간암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C형 간염은 백신은 없지만, 현재는 항바이러스제 치료로 95% 이상 완치가 가능하다"며 "조기 진단만 이뤄진다면 간암으로의 진행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간은 '침묵의 장기'로 불린다. 상당히 손상될 때까지 특별한 통증이나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건강검진에서 간 기능 수치(AST·ALT)가 정상으로 나왔다고 안심하는 것은 금물이다.

실제로 만성 B형 간염 환자 중 약 30%는 간 수치가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간섬유화 검사상 중등도 이상의 손상을 보인다. 김 교수는 "정상 수치에 속더라도 위험군이라면 정기적으로 간 초음파, 섬유화 정도 측정, 바이러스 검사를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간염 치료의 패러다임은 '간 수치 중심'에서 '간 손상 정도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ALT가 상승했을 때만 치료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수치가 정상이더라도 섬유화가 중등도 이상이면 항바이러스제를 조기 투여하도록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미국 간학회 모두 권고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히 증상 억제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간경변과 간암 발생 위험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김 교수는 "바이러스 증식을 조기에 억제하면 간세포 손상 자체가 줄어들어 간암으로의 진행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며 "조기 치료의 중요성을 의료진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생활습관 관리가 간암 막는 '백신' 역할

생활습관 개선은 간염 예방과 간암 억제의 또 다른 축이다. B형·C형 간염 바이러스는 혈액을 통해 전파되므로 개인 위생용품(칫솔, 손톱깎이 등)은 반드시 분리해 사용해야 한다. 타투나 피어싱, 반영구 화장처럼 피부를 뚫는 시술은 반드시 위생이 철저한 의료기관 또는 공인업소에서만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음주'는 간 손상을 가속화한다. 김 교수는 "만성 간염 환자가 술을 마시면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손상과 알코올 독성이 겹쳐 간암 발생 위험이 5배 이상 높아진다"며 "간염 환자에게 금주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경고했다. 균형 잡힌 식습관과 규칙적인 운동, 적정 체중 유지 또한 간 건강 유지의 기본이다. 비알코올성 지방간 역시 간암의 주요 위험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기 발견'이다. 본인이 감염된 사실을 모르고 지내다 뒤늦게 간경변이나 간암이 발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 교수는 "간염은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면 완치가 가능하지만, 방치하면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는 '조용한 폭탄'"이라며 "정기적인 혈액검사와 초음파 검진을 통해 자신의 간 상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간암은 진행도 빠르다. 따라서 확진 직후 얼마나 신속하게 치료를 받느냐가 생존율을 결정한다.
연구에 따르면 진단 후 치료가 지연될수록 종양이 커지고, 혈관 침윤이나 전이 가능성이 높아진다. 치료받지 않은 환자의 중앙 생존기간은 3개월에 불과하다는 국내 보고도 있다.

간암은 한때 예후가 극히 불량한 '불치암'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조기 발견과 항바이러스제 치료, 금주·체중 관리 등 꾸준한 관리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질환으로 바뀌고 있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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