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파괴' 통한 진보 절실하다
파이낸셜뉴스
2025.10.16 18:43
수정 : 2025.10.16 18:42기사원문
자율주행과 로봇 기술이 도로나 물류창고에서 인간의 피로와 사고의 위험을 줄여주는 세상이다. 수십년 전에는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들이 실현되면서 인류는 더 풍요롭고 더 안전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진보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큰 손실을 보고,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기도 한다.
기술혁신의 '파괴적' 속성은 기득권의 저항을 불러온다. 로마제국의 한 장인이 티벨리우스 황제 앞에서 자신이 개발한 잘 깨지지 않는 유리를 시연했을 때 황제는 그 기술과 유리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지만, 그 장인은 결국 처형되고 말았다. 새로운 유리가 보급되면 황제가 모아둔 황금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운하로 다니는 배와 말이 끄는 역마차의 소유주들과 관련 근로자들, 그리고 말의 먹이가 되는 곡물을 생산하는 농부들의 반대로 철도 보급이 수십년 늦어졌다.
하지만 기술혁신은 궁극적으로 효율의 증대와 사회의 번영을 가져온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시기에 산업혁명은 성숙기를 맞이하면서 기술의 확산과 제도 개혁이 뒤따랐으며 경제구조의 변화가 정착되었다. 19세기 후반에 근로자의 실질임금은 약 50% 상승했고, 그 결과 1910년경 영국의 지니계수는 다시 0.4로 하락했다.
기술혁신의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온다. 19세기의 동력기계, 20세기의 에너지에 이어 21세기의 신기술은 인공지능이 될 듯하다. 인공지능 때문에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은 신기술의 파괴적 속성만 보는 것이다. 인공지능 발달은 더 많은 새로운 직업과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산업혁명 시기에도 동력기계 도입으로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지만, 그 이후 더 많은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다.
2025년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조엘 모키어 교수, 필리프 아기옹 교수, 그리고 피터 하윗 교수도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 당연하거나 순탄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 사회가 가진 자원을 놓고 신기술과 구기술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다. 구기술로부터 더 효율적인 신기술로 자원이 이동하는 과정이 얼마나 순탄하면서도 신속할지는 그 사회의 제도와 관련이 있다. 특허와 같은 지식재산권의 보호를 통해 경쟁이 일정 수준 제한되지 않으면 신기술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반면 제도가 구기술의 기득권을 지나치게 옹호한다면 신기술 도입과 확산은 지연되고, 그 결과 경제는 활력을 잃고 정체될 것이다. 경쟁의 촉진과 제한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정책과 제도를 가져야만 창조적 파괴를 통한 진보를 이루어낼 수 있다.
김민성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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