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자본론' 소지해 옥살이…42년 만에 재심서 무죄
파이낸셜뉴스
2025.10.28 11:11
수정 : 2025.10.28 11:13기사원문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재심서 무죄
재판부 "범죄 증명 없는 경우 해당"
정씨 "42년 만에 국민 된 기분"
[파이낸셜뉴스] 40년 전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보관하고 있다가 불법 구금돼 옥살이를 했던 70대 남성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4단독(김길호 판사)은 28일 정진태씨(72)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재심에서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자본론뿐만 아니라 칼 마르크스 사상 저서는 국내에서 공식 출판돼 널리 읽히고 공산주의 사상도 마찬가지"라며 "서적 내용이 북한 활동에 동조하거나 국가의 존립, 안정과 위협하는 적극적인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사상과 학문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권리로 가급적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가입했던 스터디 클럽이 반국가단체인 북한에 동조해 설립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이적 표현물이라거나 피고인에게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등 이적 행위 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정씨는 선고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그동안 범죄자라는 굴레에 묶여 지내온 게 42년인데 이제야 정식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된 기분"이라며 "지금도 국가보안법 7조 5항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고, 재심 사유가 없어 억울한 분들도 많은데 그분들도 속히 소명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씨 측 변호인은 "(정씨가) 3년간 구금을 당했기 때문에 형사보상 절차를 거칠 수 있다"며 "불법 구금과 가혹 행위 그리고 처벌 이후에 여러 가지 사찰 등으로 제대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부분까지 국가 배상을 청구한다면 배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대 학생이었던 정씨는 지난 1983년 2월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혐의로 검거된 후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정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 상고했으나 모두 기각되면서 유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이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지난 4월 정씨가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받았으며 허위 자백을 강요당했다고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정씨가 당시 경찰 수사관들에 의해 약 23일간 불법 구금 상태에서 조사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앞선 결심공판에서 검찰 역시 "증거 기록과 피고인의 주장, 신빙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피고인이 불법 체포됐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정씨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welcome@fnnews.com 장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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