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국인 찾아오는 경주… 택시 불러도 30분째 '배차불가'

파이낸셜뉴스       2025.10.28 18:30   수정 : 2025.10.28 18:29기사원문
운행하는 택시 자체가 적은 경주
6부제 풀어도 2만명 감당 역부족
'APEC' 스티커 붙였지만 난감
진입로마다 경찰 통제에 우회해야
"걸어가는 게 빨라요" 쓴웃음



대형 국제행사나 연말연시처럼 이동 수요가 폭증할 때면 어김없이 '택시 대란'이 되풀이된다. 호출 앱은 먹통이 되고, 길 위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빈차를 만나기 어려운 상황은 이제 일상이 됐다. 근본적인 문제는 택시 공급과 운행 여건이 수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데 있다.

정부의 그때그때 임시 대책을 내놓지만, 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본지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025 정상회의가 열린 경주 현장을 시작으로 연말연시 등 주요 시기별 택시난 실태를 점검하고, 데이터 분석과 전문가 제언을 통해 교통 대란의 구조적 원인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경주(경북)=최승한 기자】 APEC 2025 정상회의 주간을 맞아 경주 보문단지 일대에 교통 통제가 강화되면서 택시 수급난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는 택시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부제(운행 제한) 해제 등 행정 조치를 시행했으나 현장 혼란으로 택시를 잡기는 쉽지 않았다.

지난 27일 오전 11시 30분 신경주역 택시 승강장. 'APEC 2025 KOREA' 스티커가 붙은 택시들이 나란히 있었지만, 행선지를 APEC 회의장인 '보문단지'로 말하자 기사는 난색을 표했다. 그는 스마트폰 화면의 '보문단지 교통 일부 통제' 문자를 보여주며 "보문단지 들어가는 길이 막히면 요금도, 시간도 예측이 안 된다"고 말했다.

보문단지로 향하는 도로에는 '행사 전용구역' 표지판이 붙어 있었고, 비표 없는 차량은 진입이 제한됐다. 일부 택시는 우회도로로 빠져나갔고, 진입로마다 경찰이 배치돼 있었다. 한 택시기사는 "오늘은 30분 거리인데 내일은 1시간이 걸릴지 모른다"며 "손님보다 경찰이 더 많다"고 말했다.

오후 5시가 되자 보문단지에서 나가는 택시를 구하는 건 더 어려웠다. '빈 차' 표시가 켜진 택시는 "호텔 콜 대기 중"이라며 거절했고, 호출 앱은 30분 넘게 '배차 불가'만 반복됐다. 앱 3개를 돌려가며 시도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결국 단지를 벗어나는데 1시간 넘게 소요됐다. 보문호 인근 도로에서는 캐리어를 끌며 걸어 나오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한 외국인은 "걸어가는 게 더 빠르다"고 웃었다.

경주월드 앞에서 어렵사리 잡은 택시의 운전사 황모씨(65)는 기자가 타려고 하자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며 퉁명스레 말했다. 그는 "우리는 보문단지 호텔 손님 중심으로 운행한다"며 "시간 1분, 콜 하나가 중요하다"고 했다. 민망해진 기자가 "부제를 해제했는데도 택시가 부족하냐"고 묻자, 그는 "경주시가 부제를 풀었다지만 실질적 의미는 없다"며 "택시가 통제선을 넘지 못하는데 하루 더 일하라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답했다. 이어 "생색만 내는 조치"라고 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경북 지역 택시 면허는 9411대로, 인구 251만4200명 기준 267명당 1대 꼴이다. 이는 15개 광역지자체 중 12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전북(214명당 1대)이나 충북(244명당 1대)보다 공급이 부족하고, 서울(130명당 1대)의 두 배 수준이다.

경주시는 택시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지난 22일 일반택시 307대, 개인택시 765대 등 총 1072대의 6부제를 26일부터 8일간 해제했다. 하지만 기사들은 "근본적인 규제가 걸려 있는데, 부제를 풀어봐야 의미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국토교통부는 이번 APEC 기간 고급·대형택시 사업구역을 한시 완화하고 필요 시 전국 단위로 확대할 방침이다. 그러나 현장은 달랐다.
한 택시기사는 "고급·대형 택시가 다른 지역에서 빈차로 경주까지 와서 운행해봐야 얼마나 수익성이 있겠느냐"며 "이참에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현재 경상권에서 운행 중인 고급·대형택시는 총 88대 뿐이어서 예상 방문객 2만여명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있다. 각국 주요 사절단과 기업인들에게 공항시외버스 이용을 권유하는 것 역시 한계가 있다고 기사들은 꼬집었다.

425_sama@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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