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송금업무인척 속여 '보이스피싱 자금 세탁'

파이낸셜뉴스       2025.11.02 18:11   수정 : 2025.11.03 07:04기사원문
가상자산 대리 구매

30대 남성 A씨는 지난 4월 구직활동을 하던 중 관련 플랫폼에서 '코인거래소 관련 재택근무'라는 게시물을 접했다. 플랫폼 자체가 누구나 아는 국내 대표 사이트인 데다 공고를 낸 회사의 사업자등록번호, 홈페이지, 고용계약서 등을 확인한 뒤 곧바로 지원했다.

A씨는 며칠 후 해당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온라인 고용계약서를 썼다.

다음날 업무관리자 B씨는 "연수가 필요하다"고 했다. "본인의 모니터링 하에 코인 송금 업무를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연수 지침은 아주 간단했다.

회사 자금이 A씨 계좌에 입금되면 그 돈으로 빗썸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를 구매하고, 중국계 가상자산 거래소 OKX에 개설돼 있는 전자지갑으로 전송하는 것이었다. A씨는 가상자산 거래 경험이 있던 터라 어렵지 않게 그 작업을 수차례 반복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일이 터졌다. A씨는 계좌가 있는 시중은행으로부터 본인 명의의 빗썸 거래전용계좌가 지급정지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빗썸에서도 같은 내용의 알림이 왔다. '코인을 구매하라'며 받은 자금이 실제로는 회삿돈이 아니라 보이스피싱 피해금이라는 이유였다.

문제는 계속 터졌다. A씨는 해당 계좌에 남아 있던 돈에 대해 '보이스피싱 피해자로의 환급을 위한 채권소멸절차가 개시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자금융거래도 제한돼 다른 은행에 개설된 계좌의 인터넷 뱅킹마저 막혔다.

A씨는 억울한 마음에 은행에 텔레그램 대화내역, 송금내역 전자계약서 등의 자료를 제출하며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은행 측은 "이들 자료 만으로는 코인 대리 구매라는 비정상적 행위를 정상 거래로 취급할 수 없다"며 불수용 결정을 내렸다. 경찰에도 신고했지만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채권소멸절차 종료 후 금융거래제한자로 지정되는 일만 무기력하게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수년간 신규계좌 개설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송금이나 이체에 있어서도 한도 제한이 심해지게 된다는 점을 알게 된 A씨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금감원 측은 가상자산 거래는 보이스피싱을 포함한 다양한 범죄와 관련된 자금세탁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가상자산 대리 구매는 일반적인 상식에 비춰 볼 때 정상적 거래라 보기 어렵다"며 "구직 사이트 및 커뮤니티 등에 높은 수당이나 수수료를 대가로 이를 권하는 제안에 대해선 의심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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