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 먼저, 투수는 나중… 구단들이 신인드래프트 기조를 바꾼 이유
파이낸셜뉴스
2025.11.03 10:30
수정 : 2025.11.03 12:35기사원문
문현빈, PS 16타점으로 한화 부활 이끌어
김영웅-이재현, 삼성 리빌딩 중심축으로 삼성 시대열어
이율예, 신인 1년차에 벌써 두각 나타내는 포수
1R서 야수만 무려 4명... 야수선점 효과 뚜렷
내년에도 좋은 야수 선점 전략은 유효
[파이낸셜뉴스]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의 판도가 변하고 있다.
한때 ‘투수=드래프트의 꽃’이라 불리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대신, ‘야수=팀의 미래’라는 공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지난 9월 17일 열린 롯데 호텔에서 열린 2026 KBO 신인드래프트의 최대 화제는 NC 다이노스가 전체 2번으로 신재인을, 한화 이글스가 전체 3번으로 오재원을 지명한 장면이었다. 전통적으로 상위 라운드는 즉시 전력감 투수의 무대였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키움이 전주고 박한결(10번), 김지석(인천고·11번)을 연달아 지명했고, NC는 곧바로 이희성을 선택했다. 드래프트 초반부터 ‘야수 폭풍’이 몰아쳤다.
왜 이런 흐름이 만들어졌을까. 간단하다. 투수는 언제든 수혈이 가능하지만, 야수는 키우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KBO의 외국인 선수 제도 속에서 구단들은 늘 검증된 외국인 투수들에게 기대를 건다. 스카우트가 실패하더라도 대체 수단이 존재한다. 그러나 야수는 다르다. 외국인 야수를 시즌 중간에 교체하기도 어렵고, 포지션 특성상 팀 케미스트리와 언어, 문화 적응이 크게 작용한다. 결국 국내 야수 자원이 곧 팀의 체력이며, 우승의 뼈대가 된다.
삼성 라이온즈는 그 대표적인 예다. 2022 신인드래프트에서 1차로 이재현, 2차 1라운드로 김영웅을 지명했다. 당시 11명 중 8명이 야수였다. 3년 뒤, 그 선택은 ‘신의 한 수’로 불린다.
김영웅은 올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3점홈런 2방을 날리며 완전히 중심타자로 자리 잡았다. 이재현은 공수의 중심이자 팀의 야전사령관으로 성장했다. 삼성의 리빌딩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명확하다. ‘야수 우선주의’다.
한화의 사례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3년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북일고 내야수 문현빈을 지명했을 때, 현장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부분은 투수 지명을 예상했다. 그러나 문현빈은 올해 타율 0.320, 전체 5위의 타격감을 보여주며 김민석(롯데)을 넘어서는 대형 타자로 성장했다. 포스트시즌에서 16타점을 쓸어담으며 ‘한화의 가을’ 주역으로 거듭났다.
결국 구단이 ‘감’을 믿고 야수를 택한 결과가, 리그 상위권 팀으로의 도약으로 이어진 셈이다.
SSG 랜더스가 작년 1라운드에서 포수 이율예를 지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포수는 팀의 전략, 리드, 수비를 아우르는 ‘두뇌형 포지션’으로, KBO에서 가장 희소한 자원이다. 이율예는 시즌 막판 1군 데뷔와 함께 포스트시즌에도 이름을 올렸다. 향후 ‘청라 시대’를 맞이하는 SSG의 안방을 책임질 유력 후보로 급부상했다. 이율예가 때려낸 지난 10월 1일 끝내기 투런은 아직도 팬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포수, 내야수, 중견수—이른바 센터라인의 완성도는 팀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야수 선호 흐름의 또 다른 이유는 경제적 가치와 팬덤이다. 투수는 5일에 한 번 던지지만, 야수는 매일 팬들과 만난다. 김도영은 기량을 제외하고 유니폼 판매량만으로도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수익을 구단에 안겨줬다. 김도영·이재현·김영웅·문현빈·신민재·문보경 등은 팀 성적뿐 아니라 팬층 확대의 중심에 있다. 특히 LG의 통합우승에는 홍창기-신민재의 테이블세터, 문보경의 3루 수비, 박동원의 장타력이 모두 맞물렸다. 국내 야수 자원의 성장은 곧 우승의 전제 조건이 됐다.
투수는 여전히 중요하다. ‘야구는 결국 투수놀음’이라는 명제는 유효하다. 하지만 지금의 리그 구조에서는 투수보다 야수의 가치가 빠르게 상승 중이다.
외국인 선발 투수 2인 체제가 정착되고 아시안쿼터까지 곧 시행되는 상황에서 국내 야수의 완성도는 팀의 운명을 갈라놓는다.
그리고 이는 하위 라운드에서 야수 보강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상위 라운드부터 ‘야수를 쟁여놓는’ 트렌드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모 구단 스카우트 관계자는 "투수는 2~3R에서도 좋은 선수가 남아있다. 하지만 야수는 2R 초반만 지나도 없다"라고 야수가 갈수록 빨라지는 이유를 설명했다. 일례로 원주고 포수 이희성 또한 예년에 비하면 기량이 아쉽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그가 최상위 지명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11월 1일 울산 Fall리그 결승전에서 5타수 5안타를 폭발시킨 신재인이 MVP에 올라섰다. 그는 단순히 유망주가 아니다. 야수 중심 드래프트 시대의 선언문일지도 모른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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