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이 '자백'으로…'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수사부터 위법 천지

뉴스1       2025.11.04 14:56   수정 : 2025.11.04 15:06기사원문

28일 오후 광주고등법원에서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재심 피고인 A 씨와 딸 B 씨가 재심 공판을 위해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2025.10.28/뉴스1 ⓒ News1 박지현 기자


(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 검찰의 '위법·강압 수사'로 아내와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16년 만에 벗은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의 백 씨 부녀가 뒤늦게나마 검찰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았다.

경계선 지능을 가진 딸은 '네가 엄마를 죽였냐'는 갑작스러운 검사의 질문에 울음을 터트린 게 '자백'으로 처리됐다.

한글을 제대로 못 쓰는 아버지는 '딸이 당신도 공범으로 인정했다'는 '이간질'에 없던 범죄 사실을 털어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4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광주고법 제2형사부(재판장 이의영)는 지난달 28일 존속살해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백점선 씨(75)와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그의 딸 백 모 씨(41)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백 씨 부녀는 지난 2009년 7월 6일 전남 순천 한 마을에서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타 아내이자 엄마인 최 모 씨, 마을 주민 1명을 살해하고 마을 주민 2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2012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하지만 재심 재판부는 검찰 수사와 기소, 재판이 검찰의 예단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판시했다. 검찰이 한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아버지 백 씨를 상대로 아무런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았고, IQ 70 수준의 경계선 지능을 가진 딸 백 씨를 상대로는 유도성 질문을 반복하고 자백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재심 재판 과정에선 검찰의 위법·강압 수사 사례가 수두룩하게 확인됐다.

재심 재판부가 "구체적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검찰 수사관과의 면담 이후 자백 진술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자백 동기, 자백에 이르게 된 경위에 대해 상당한 의심이 든다"고 판시할 정도였다.

아버지 백 씨는 약 13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수갑과 포승에 결박돼 있었다. 이 같은 장시간 조사와 결박은 고문, 폭행에 이르지 않아도 허위 진술을 유발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재판부는 봤다.

조서 작성 과정에도 위법성이 난무했다. 검찰은 2009년 8월 24일 오후 10시 30분쯤 딸 백 씨에 대한 첫 피의자신문을 마친 지 48분 만에 살인 사건 피의자로 긴급체포했다.

당시 검찰은 딸이 마을 주민을 성폭력으로 신고한 것을 조사하던 중 "어머니가 사망한 사건과 연관 짓기 위해 그런 것 아니냐"는 등의 질문으로 추궁했다. 딸은 울음을 터트렸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신문 조서에 'A 씨가 청산가리를 구입해 어머니를 죽였다고 진술했다'고 남겼다.

이후 막연한 가능성과 추측에 따른 대질신문과 암시성 질문이 이어졌다. 객관적 증거는 없었다.

조사관과 검사는 범행 방법, 이유 등에 대한 유도식 질문을 이어갔다. 조서에 백 씨 부녀의 답변은 '네'라는 짧은 답변으로 압축됐다.

아버지는 '청산염을 막걸리에 넣었냐'는 수사관의 질문에 "제 생각이 아니다"고 수차례 답변했으나 조서엔 "청산염을 막걸리에 타기로 한 것은 본인의 생각이다"는 자백 진술이 들어갔다.

또 진술 번복 이유에 대해 백 씨가 설명하려 해도 검사는 "시간이 없으니 묵묵부답으로 넘어간다"고 했다.

다른 참고인에 대한 조사에서는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수갑 채워서 보내버리겠다"며 압박하기도 했다.

증거도 오락가락이었다. 검찰은 백 씨가 범행 전 막걸리를 순천 시장에서 구매했다고 공소사실을 적시했다. 하지만 백 씨의 화물차는 5일에만 한차례 촬영됐을 뿐 다른 일자에는 주택에서 시내로 가기 위한 도로나 톨게이트 CCTV에 찍히지 않았다.

이 같은 경찰의 수사 결과는 재심 재판에서 처음으로 변호사에 의해 제출됐다.

또 오이농사를 짓던 주민들은 검찰에서 '유황가루를 사용할 뿐 오이농사에 청산염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진술했지만 이 역시 재심 개시 전까지는 제출되지 않았다.


재심 재판에 출석한 당시 수사 검사와 수사관은 "피고인에 대한 반말과 포승줄 사용, 몰아붙이는 식의 진술조서 작성은 모두 통상적인 수사 기법이자 수사 관행이었다"며 끝까지 강압 수사를 부인했다.

원심형을 유지해 달라던 검찰은 뒤늦게 국민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은 것과 피고인들의 억울함을 인정했다.

검찰은 "적법절차에 따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자세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해야 할 검찰이 본연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던 점을 깊이 반성한다"고 공식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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