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봉지에 물총' 은행강도…바로 옆 특수부대 출신 고객 있었다

뉴스1       2025.11.16 07:01   수정 : 2025.11.16 20:19기사원문

A 씨가 부산 기장군 일광읍에 있는 한 은행에서 강도 행각을 벌이던 중 고객과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부산 경찰청 제공 CCTV 영상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뉴스1) 장광일 기자 = 2025년 2월 10일 모자, 목도리,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한 남성이 부산 한 은행으로 들어섰다.

남성은 권총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소리쳤다.

"주목! 다 나와! 안 나오면 쏜다!"

이어 자신이 가져온 캐리어를 은행 직원에게 넘긴 뒤 5만 원짜리 지폐 전부를 넣으라고 지시했다.

그 순간 은행에 볼일이 있었던 또 다른 남성이 강도를 덮쳤다. 강도가 가지고 있던 검은 봉지 속엔 공룡 모양의 장난감 물총이 들어있었다.

대체 그는 왜 강도가 됐을까?

A 씨(30대)는 2020년 서울 한 공장에서 일을 하다 그만두게 됐다. 그 뒤 가족들과 함께 부산에 내려와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이 실패하고 다시 취업을 시도했으나 그마저 쉽지 않았다. 아내와 이혼을 하고, 공과금을 내지 못해 살던 오피스텔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이혼한 아내 집에 얹혀살던 A 씨에겐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이 있었다. A 씨는 아들에게 가방이나 옷조차 사줄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아들의 장난감 물총이 A 씨의 눈에 들어오게 됐다. 그렇게 그는 장난감 물총을 든 강도가 됐다.

A 씨는 강도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지난 5월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120시간 사회봉사를 선고받았다.

1심을 맡았던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부(이동기 부장판사)는 "범행 당시 직원이나 은행에 있던 시민들에게 상당한 공포와 충격을 줬을 것"이라며 "다만 범행 도구가 실제로는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점, 생활고로 범행에 이르게 된 점, 실질적인 재산상 피해가 없던 점, 피고인이 반성을 하고 있으며 이전에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형이 너무 약하다는 이유로 항소를 제기했다.

2심 재판이 열린 8월. 부산고법 형사2부의 재판장을 맡은 박운삼 부장판사는 판결에 앞서 "피고인 앞으로 어떻게 살 거예요? 어쨌든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양형에 대해선 유리하고 불리한 정상 모두 1심 판결에서 적용됐고 추가적으로 형량이 변경될 사정은 없었다"며 "항소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그러곤 다시 A 씨를 향해 "일용직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그거라도 열심히 해서 자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A 씨의 범행 당일 강도를 덮쳤던 시민 B 씨(50대)는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아내의 생일을 맞아 은행에 들렀던 B 씨는 "은행 업무를 보고 있는데 등 뒤에서 '무릎을 꿇어라'는 등의 소리가 나 쳐다보니 강도가 있었다"며 "강도 손에는 총처럼 생긴 물건이 비닐봉지에 쌓여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강도가 1명뿐이어서 검은 봉지만 뺏으면 되겠다고 판단했고, 그때부터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총만 바라봤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자칫 나도 다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도 있었고 당시 상황을 해결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총기 사고가 발생할 상황까지 생각해 사람이 없는 쪽에서 총을 뺏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박 씨는 "강도를 잡고 보니 검은 비닐봉지 속 물건이 장난감 물총이었지만 강도를 잡을 때까지만 해도 가짜 총일 것이라고 전혀 생각 못 했기 때문에 사력을 다했다"며 "아무도 다치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어 "예전 701부대에서 군 생활을 한 경험이 이번에 도움이 됐던 것 같다"며 "아내는 평생 잊지 못할 생일로 기억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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