惡手 된 다카이치 '대만 발언'… 中, 日경제 압박 들어간다
파이낸셜뉴스
2025.11.16 18:26
수정 : 2025.11.17 08:20기사원문
다카이치, 일본 내 강경 보수 지지층 의식
'대만 유사시 자위대 출동 가능' 공식 거론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도 물러서기 힘들어
中에선 "목 베겠다" 원색적 비난 이어
일본여행 자제 촉구 등 '한일령' 시사
22일부터 G20 정상회의… 대면 불가피
양국 총리 타협점 찾을지 국제사회 관심
양측이 어떤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지 여부가 다카이치 정권 외교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中 여행 자제령에 日 "다층적 소통 중요"
그는 양국 외교 당국 국장급이 이날 협의를 진행했고 일본 측이 중국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했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전날 공식 위챗 계정을 통해 "중국 외교부와 주일 중국대사관·영사관은 가까운 시일 내 일본 방문을 엄중히 주의할 것을 알린다"며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인 중국인은 현지 치안 상황을 면밀히 확인하고 안전 의식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 여행 자제령을 내리게 된 배경으로는 지난 7일 다카이치 총리의 국회 발언을 지목했다.
중국 외교부는 "최근 일본 지도자가 대만 문제에 대해 노골적인 도발 발언을 해 중일 간 인적교류 분위기가 심각하게 악화했다"며 "이에 따라 일본 내 중국인의 신체와 생명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초래됐다"고 밝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7일 국회에 출석해 "대만에 대해 무력 공격이 발생하고 해상 봉쇄를 해제하기 위해 미군이 지원에 나서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무력이 사용되는" 시뮬레이션을 언급했다. 이어 "전함을 동원한 무력 행사가 수반된다면 어떻게 보더라도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는 경우"라며 집단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중국 정부와 관영 매체는 다카이치 총리 발언에 강력 반발했다. 중국 인민 해방군 기관지 '해방군보'는 지난 15일자 1면 논평에서 "일본이 대만해협 정세에 무력으로 개입하면 침략 행위로 간주하며 중국은 반드시 통렬히 격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는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하는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군뿐 아니라 일본 자위대의 반격도 받게 되면 군사 계획의 전제가 흔들릴 수 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일본 정부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중국 측에 설명하며 이해를 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도 지난 10일 국회 심의에서 "대만 문제는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국 갈등에 기름 부은 中 '참수 발언'
사태 진정을 어렵게 만든 것은 쉐 총영사가 지난 8일 X(옛 트위터)에 올린 게시물이다. 쉐 총영사가 다카이치 총리 발언을 보도한 기사를 인용하며 "멋대로 뛰어든 그 더러운 목은 한순간의 주저 없이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적은 것이다.
이에 일본 측도 태도를 강경하게 바꿨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지난 12일 캐나다 방문 중 기자들에게 "해외 공관장으로서의 발신으로 매우 부적절하다"며 중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요구했다.
자민당과 일본유신회 등 일본 정치권에서는 쉐 총영사를 추방하라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외교관을 사실상 귀국시킬 것을 요구하는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기피 인물)'라는 국제법상 조치다. 일본 외교부가 이 조치를 내린 것은 4건에 그친다.
중국 외교부는 쉐 총영사의 게시물이 "대만해협 무력 개입을 조장하는 위험한 발언에 대한 것이지 총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며 두둔했다.
오히려 지난 13일 밤 쑨 웨이둥 중국 외교차관이 가나스기 겐지 주중 일본대사를 불러 총리 발언 철회를 요구했다. 이에 일본도 다음날인 14일 후나코시 다케히로 외무차관이 우장하오 주일 중국대사를 외무성에 불러 쉐 총영사 게시물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다.
중국 외교부가 "중국인의 신변 안전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한다"며 일본 여행 자제령을 내린 것도 바로 그날 밤이다.
■대만 문제에 양국 여론도 고려
양국간 대립은 여전히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 매우 중시하는 대만 문제이자 양국 모두 국내 여론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단적 자위권 관련 발언은 일본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돼 온 시나리오다. 일본의 존립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 미국에만 방위를 맡겨서는 미일 동맹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만 미국이 개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이 단독으로 대만에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시나리오는 정부 차원에서 준비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본적으로는 미국이 개입하고 일본이 미국에 대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구조를 전제로 한다. 미국은 그동안 대만 문제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미국이 어떻게 행동할지 일부러 밝히지 않아 중국이 다양한 가능성을 계산하게 만들어 전략적 비용을 높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일본도 그동안 미국에 보조를 맞춰 왔지만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 발언으로 이 구조를 흔든 셈이다.
이번 발언은 일본 내에서도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츠지모토 키요미 입헌민주당 참의원 의원은 X(옛 트위터)에 "이번 총리 발언은 (미국이 개입하고 일본이 미국에 대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대만으로부터 일본이 지원 요청을 받고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시나리오처럼 들린다"고 지적했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가 중국의 요구대로 발언을 철회하면 집단적 자위권 행사 여지를 좁힐 우려가 있다. 다카이치 총리 자신도 보수층과 젊은 세대에게 높은 지지를 얻고 있어 물러서기가 쉽지 않다.
■2012년 갈등 이후 최악 우려
중국 역시 일본에 대해 '약한 태도'로 보일 경우 국내 비판을 받을 위험이 있다. 특히 올해는 일본의 대만 점령 종료와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맞는 해인데 일본 총리가 대만과 관련해 민감한 발언을 내놓자 '체면이 깎였다'며 더 거세게 반발하는 모습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일본 여행 자제령으로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주면서 소수 여당 기반의 다카이치 정권이 얼마나 강경한 대중 노선을 취할 지를 시험하고 있다.
일본 관광청이 집계한 지난해 방일 외국인 소비 동향에 따르면 중국인 여행객의 소비액은 1조7265억엔(약 16조2633억원)으로 전년 대비 2.3배 증가했다. 이는 전체의 21.2% 비중으로 국가·지역별로 가장 많은 수준이다. 올해 1~9월 중국인 관광객 수는 748만명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수준(698만 명)을 넘어섰다.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정치권 내 소통 창구는 이전보다 줄었다. 아베 신조 정권 시절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처럼 중재 역할을 할 중진이 다카이치 정권 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친중 노선을 걸어온 공명당도 연립 정권을 떠난 상태다.
일본 정부 내에서는 이번 갈등이 최악의 경우 몇 년간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 언론들은 2016년 한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뒤 중국 정부가 지금까지 '한한령'을 해제하지 않은 점을 거론하며 일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향후 양국 관계의 분수령은 양국 정상이 직접 대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오는 22~23일 남아프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다카이치 총리도 이 회의에 참석할 전망으로 양국 총리가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지 주목된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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