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복수 vs 마땅한 정의" 학폭가해자 대학 불합격, 이게 논쟁거리가 됩니까

파이낸셜뉴스       2025.11.22 14:00   수정 : 2025.11.22 14:00기사원문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제재 강화 국민적 공감
"학폭으로 신고해 버린다" 협박 수단으로도 쓰여
대입뿐 아니라 고입까지 정교한 기준 마련돼야



[파이낸셜뉴스] 지난 13일 수능이 끝나면서 대학 입시가 본격화됐다. 올해는 대학들이 전형 과정에서 학교폭력 이력을 의무 반영해야 하는 첫해라는 점에서 관심이 쏠린다.

'학폭' 이력 있는 지원자 75% 대학 못 갔다


교육부는 지난 2023년 학폭 근절을 위한 대책으로 2026학년도 입시부터 학폭 기록을 입시에 의무 반영하도록 했다.

대학들은 이에 앞서 2025학년도 입시에서부터 자율적으로 학폭 기록에 따라 감점 조치했다. 이에 따라 학폭 가해 이력이 있는 지원자 4명 중 3명이 불합격 처리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교육부로부터 받은 '2025학년도 대입 전형 내 학교폭력 조치사항 반영 현황' 에 따르면 국내 4년제 대학 193곳 중 자료를 제출한 134개 대학 가운데 절반 가량인 61곳이 학폭 이력을 반영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대학에서 접수된 397명 가운데 298명, 전체의 75%이 학폭 이력때문에 불합격 처리됐다.

지원 전형으로 살펴보면 수시 지원자 370명 중 272명, 정시 지원자는 27명 중 1명을 제외한 26명이 탈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별로 살펴보면 계명대가 43명 중 38명으로 가장 많이 탈락시켰다. 경북대 23명 중 22명, 경기대 20명 중 19명이 불합격하며 뒤를 이었다.

서울 주요 대학에서도 불합격 사례가 확인됐다. 서울대는 정시에서 2명, 연세대와 성균관대는 수시에서 각각 3명과 6명이 학폭 이력으로 감점을 받아 최종 불합격했다. 이밖에도 한양대(12명), 서울시립대(10명), 경희대(6명), 건국대(6명), 동국대(9명)에서 불합격자가 나왔다.

학폭 가해자 제재가 강화된 배경




대학들이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제재를 서둘러 강화한 배경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와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폭 사태가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 '더 글로리'는 2022년 12월 1부가 공개되자마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학교폭력의 심각한 실태를 재조명하는 시발점이 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터진 것이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건이었다. 2023년 2월, 정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다음날 아들 정씨가 학교폭력으로 중징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대에 입학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정 변호사가 집요하게 소송을 벌여 정씨가 졸업하기 전에 학폭 기록을 삭제했다는 사실과 함께, 정씨가 서울대에 합격할 당시 학폭 사건으로 받은 불이익이 수능성적 2점 감점에 불과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후 교육부는 2026년부터 모든 대학에 학교폭력 조치 사항 반영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학폭 기록을 생활기록부에 남기는 기간 역시 2년에서 4년으로 늘려, 대입 시기를 최대한 늦추더라도 피해갈 수 없게 하는 등의 방안도 포함됐다.

"과도하다" vs "마땅하다"


학폭 이력이 실제 불합격으로 이어지자 일각에서는 사춘기 시절의 실수까지 진학 제한으로 연결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지난 5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학폭 가해자 입학 취소가 과연 옳은 일일까"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당장은 통쾌하다는 기분이 들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현명한 판단인지는 의문이 든다"며 "사춘기 시절 남학생들의 주먹다짐까지 모두 학폭으로 낙인찍고 대입까지 불이익을 주는 건 갱생의 여지를 너무 일찍 차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누리꾼들은 "왜 가해자를 옹호하느냐", "학폭 하면 인생 망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피해자 입장을 먼저 생각하라"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고교 입시는 제재 안 하나? 형평성 논란도


고교 입시는 여전히 사각지대라는 지적도 나왔다. 최근 충북체육고등학교가 후배를 지속적으로 괴롭혀 사회봉사(4호) 처분을 받은 중학생을 펜싱부 특기생으로 선발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당시 충북체고는 도교육청 고입 체육특기자 선발기준에 학폭 처벌을 받은 학생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고, 이미 입학요강과 합격자 발표가 난 만큼 A군의 입학을 제한할 방법이 없다고 해명해 비난을 받았다. 이후 충북체고는 2027학년도부터 학폭 가해 학생에 대한 입시 불이익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제도의 허점과 과제


학폭 조치 수준과 불이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현행 학폭 조치는 1호 '서면 사과부터 9호 '퇴학'까지 9단계로 구성되는데, 경미한 수준의 1~3호 처분과 강제전학(8호) 이상의 중징계를 받은 학생이 입시에서 대입 실패라는 비슷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교대 등 일부 대학은 학폭 처분 수준에 관계 없이 지원조차 불가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학폭 신고가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현장에서 제기된다. 학폭 이슈에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학생들 사이 갈등 상황에서 "학폭으로 신고해 버린다"는 말이 일종의 협박 수단처럼 쓰이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단순한 다툼까지 학폭 절차로 회부되고 있어 정작 중대한 사안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반면 실제 학폭은 더 교묘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한 중학교에서는 가해 학생이 '학폭 피해로 숨진 학생의 귀신이 등장한다'는 설정의 뮤지컬 대본을 쓰고 피해 학생에게 '귀신 역할' 연기를 강요한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샀다. 잘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심리적 조롱과 압박을 가하는 신종 괴롭힘이 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편 교육부는 2026학년도 대학 입시 결과를 바탕으로 학폭 조치로 인한 불합격 비율을 전수 조사할 방침이다. 대학마다 다른 반영 방식에 따라 입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분석해 향후 정책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학교폭력은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고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긴다. 하지만 제도가 엄정할수록 그 운영은 더욱 정교하고 공정해야 한다. 목표는 지금 학교에 있는 학생들이 폭력 없이 평화롭고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도록하는 데 있어야 한다. 학교를 떠난 어른들을 위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으면서도, 진짜 가해자는 반드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균형 잡힌 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디깅 digging'이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땅을 파다 dig]에서 나온 말로, 요즘은 깊이 파고들어 본질에 다가가려는 행위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주말의 디깅]은 한가지 이슈를 깊게 파서 주말 아침,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sms@fnnews.com 성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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