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일상, 낯선 경험" 국내 소도시 여행 어때요?
파이낸셜뉴스
2025.11.20 07:00
수정 : 2025.11.20 22:56기사원문
요즘 젊은이들은 해외로 여행을 떠나서도 지방 소도시를 찾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도시를 벗어나 작지만 특색있는 소도시만의 풍광과 정취를 여유롭게 즐기기 위해서다. 후지산이 바라다 보이는 일본 소도시 후지노미야, 베트남 북부의 작은 국경 도시 사파 등이 그런 곳이다.
국내에도 가볼만한 소도시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요즘 여행'이라는 콘셉트로 하루 묵으며 쉬엄쉬엄 돌아볼 수 있는 국내 소도시 여행지 4곳을 추천했다. 아직 대중화되진 않았지만, 감각있는 여행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최근 찾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는 곳들이다.
■걷는 맛이 있는 항구도시, 묵호를 아는가?
묵호 출신 소설가 심상대는 지난 1990년 '묵호를 아는가'라는 제목의 소설을 발표한 바 있다. 옛 강원도 명주군 묵호읍은 1980년 삼척군 북평읍과 합쳐져 동해시가 되면서 이젠 항구로만 남아있다.
서울에서 이곳까지는 KTX로 불과 2시간30분 거리다. 모든 볼거리가 걸어서 30분 거리 안에 모여있어 차 없이도 알찬 여행이 가능하다. 동해문화관광재단이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지와 영화 속 명대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운영하는 '뚜벅아, 라면 묵호 갈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묵호의 이곳저곳을 빠짐없이 돌아볼 수 있다.
투어는 묵호 기념품을 파는 소품샵에서 스탬프북을 받아 시작한다. 이후 국내 최초 '연필뮤지엄'에서 3000여종에 달하는 연필을 구경하고, 4층 카페에서 묵호 일대를 조망한다. 옛 번화가 발한삼거리와 동쪽바다중앙시장 등을 지나면 묵호의 시그니처인 '논골담길' 벽화마을이 나온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명대사 "라면 먹고 갈래?"가 탄생한 삼본아파트도 필수 코스다. 이어 투어의 마지막은 '문화팩토리 덕장'에서 문어 등 해산물 토핑이 랜덤으로 제공되는 라면으로 장식한다.
이밖에도 묵호의 스릴을 즐길 수 있는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와 일종의 바다 위 산책로라고 할 수 있는 '해랑전망대', 걸쭉한 장칼국수가 일품인 묵호의 노포 '오뚜기칼국수'도 빼놓기 아쉬운 곳들이다.
■시간이 느릿느릿 흐르는 그곳, 예산 대흥
이번에는 옛 고향의 정취를 유감없이 느낄 수 있는 곳, 충남 예산의 작은 마을 대흥이다. 야트막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대흥 벌판에선 어린 시절 땅따먹기, 고무줄놀이를 하던 추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첫 목적지는 대흥면 상중리 ‘의좋은 형제마을’이다. 예산 대흥면은 지난 2009년 우리나라에서 여섯번째, 중부권에선 처음으로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휘영청 달 밝은 가을밤 형과 동생이 몰래 볏단을 얹어주다 얼싸안고 울었다는 의좋은 형제 이야기의 실존 인물들이 살던 곳이다.
슬로시티 대흥면을 가장 잘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느린 꼬부랑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옛이야기길, 느림길, 사랑길로 이뤄진 이 길에는 이곳의 역사와 전통문화, 자연환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옛이야기길엔 1000년 넘은 느티나무와 의좋은 형제 이야기가 깃들어 있고, 느림길엔 옛 관아 건물인 대흥동헌과 대흥향교 등이 예당호 물길과 숲길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또 마지막 코스 사랑길에선 낮은 산자락 아래 자리 잡은 아기자기하고 평온한 마을 풍경과 만날 수 있다.
대흥 슬로시티엔 변치않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고 한다. '자연환경 보존, 전통문화 계승, 주민 주도 운영' 등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손바닥 정원'이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손바닥정원은 주민들이 집마당을 직접 가꾼 작은 정원으로, 직접 쌓고 심은 돌담과 나무는 마을 고양이들의 쉼터 역할까지 한다.
■어린 시절 외갓집처럼 푸근한 곳, 남해
독일인마을과 금산 보리암, 다랭이마을 등이 있는 경남 남해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남해관광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남해 외갓집’은 소도시 남해를 밀도있게 만날 수 있는 로컬 체험 프로그램이다. 언제든 남해를 찾아 고향에서 느낄 수 있는 푸근함을 몸소 체험하며 편안하게 쉬었다 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다. 소박한 일상의 공간에서 현지인이 직접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그들과 소통함으로써 남해에서의 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
남해 외갓집은 세 개의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지 드로잉화가가 진행하는 ‘남해 언니네 드로잉 어반스케치 체험’, 도자기 공방&카페 ‘티라와 흙꿉노리’에서 진행하는 ‘티라 삼촌네 외갓집 도자기 원데이 클래스’, 삼동면 봉화마을 농가에서 진행하는 ‘광수 삼촌네 친환경 블랙베리 체험’ 등이다.
함께 여행하기 좋은 곳으로는 ‘다랭이 마을’이 있다. 다랭이란 과거 가난했던 시절 우리 조상들이 농토를 조금이라도 더 넓히기 위해 바닷가 가파른 비탈을 깎아 조성한 계단식 논으로, 작게는 3평에서 크게는 300평에 이르는 700여개의 계단식 논이 무려 108층의 계단을 이룬다. 다랭이논과 남해 바다를 따라 조성된 '다랭이지겟길'(남해바래길 11코스)을 쉬엄쉬엄 걷다보면 "여기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천천히, 더 깊이" 담양에서의 1박2일
‘느림의 미학'이 그리워지는 날엔, 전남 담양 창평 삼지내마을로 향해보자. 세 개의 개울이 마을을 가로지른다고 해 '삼지내'라고 불리는 이 마을은 전남을 대표하는 슬로시티로 유명하다. 고가와 토석담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돌과 흙을 쌓아 만든 옛 담장은 국가등록문화유산에 지정됐다. 담장을 따라 걷다보면 고재선가옥 등 국가유산에 지정된 건축물을 비롯해 평범한 살림집과 카페, 민박을 겸한 한옥, 주인 잃은 쓸쓸한 고가 등 다채로운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한옥으로 지은 창평면사무소 뒤로는 이층 한옥을 품은 작은 뜰이 꾸며져 있다. 마을 안길을 산책하고 주민들이 운영하는 숙소나 한옥을 개조한 카페, 음식점을 이용하며 느긋하게 머무는 것이 삼지내마을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하룻밤 묵어가고 싶어하는 여행객들을 위해 100년 된 고택부터 아담한 민박까지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숙박시설도 있다. 또 다양한 인문학 강좌와 문화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어 마음을 살찌우는 시간을 가져볼 수도 있다.
담양에는 또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죽녹원과 관방제림이 있다. 청량한 대숲을 품은 죽녹원에서 산책로를 따라 죽림욕을 즐기고 족욕 체험이나 사운드워킹 투어도 즐길 수 있다. 강 건너편에는 천연기념물인 관방제림이 자리한다.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성한 인공림으로, 벚나무·푸조나무·팽나무 등 다양한 수목이 어우러져 계절마다 색다른 매력을 자랑한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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