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일은 많고 아직 날은 저물지 않았다

파이낸셜뉴스       2025.11.19 18:03   수정 : 2025.11.19 18:03기사원문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출신의 전략가로 오나라를 강대국으로 키웠던 오자서의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다"는 의미다.

중소기업계의 오랜 염원이던 소상공인 전담차관이 마침내 임명됐다.

이병권 차관이다. 소상공인 차관을 신설한다고 하고 2개월이나 지나긴 했지만 이제라도 본격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지금 우리나라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상황은 악화일로다. 국내 경기가 기나긴 침체를 벗어나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아직까지는 남의 얘기일 뿐이다.

지난해 개인과 법인을 포함해 폐업신고 건수가 100만건을 넘었다는 것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소상공 기업체당 연간 매출액은 2022년 2억3300만원에서 2023년 1억9900만원으로 감소했고,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3100만원에서 2500만원으로 줄었다.

2021년 858조4000억원이던 자영업자 대출 잔액이 올해 2·4분기 말 1069조6000억원까지 급증하면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취약차주의 연체율은 2022년 5.40%에서 지난해 11.16%까지 높아졌다.

전기료나 임차료 등 고정비 부담이 지속되는 가운데 실질적 자금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버티는 것마저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기에 폐업까지 이어질 경우 다시 재기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에서 자영업자·소상공인 생태계는 선순환이 아닌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일모도원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정부는 소상공인 전담차관 신설 당시 △소상공인 정책 수립 △창업 촉진, 판로 확보 등 지원·육성 △상생협력, 폐업·재기 지원 등 보호 △소상공인 경영안정 지원 등을 수행한다고 발표했다. 하나하나가 지금 소상공인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사실 전담차관이 신설된다고 해서 당장 무언가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일 수도 있다. 구조적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지금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적 변화가 먼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시적 자금지원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가 없다. 포괄적인 소상공인 생태계 안전망 구축이 절실한 상황이다. 소상공인은 우리나라 경제에서 막대한 고용을 담당하는 중요한 축이지만 경기충격에 가장 취약하기도 하다. 경영역량 강화·재기 지원 등 체계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중기부가 진행하는 부담완화 크레딧 제도는 전기·가스·통신비 등 필수비용을 낮춰 고정비 부담을 줄여주는 사례다.

여기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한 인식개선도 중요한 과제다. 온라인상에서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오면 빠지지 않는 댓글이 있다. 바로 '누칼협(누가 그러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이다. 자영업을 선택한 것도 본인이고, 힘든 것도 본인이 선택한 결과일 뿐인데 공감이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해당 자영업자를 위로하는 댓글도 다수 있지만 사회적인 인식이 자영업자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역할을 알리고, 이들에 대한 지원이 국가경제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첫 소상공인 전담차관이 된 이병권 차관의 역할이 그만큼 막중하다.
그런 면에서 부임 직후 현장을 잇따라 방문하며 소통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모습에 기대가 크다. 소상공인을 위해 할 일이 많다. 날이 아직 저물지 않은 동안 소상공인을 위한 지속가능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kim091@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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