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품 조각투자 눈앞… K컬처 날개 달까
파이낸셜뉴스
2025.11.20 18:39
수정 : 2025.11.20 18:39기사원문
조각투자 플랫폼의 인가 심사 진행
금융위 연내 사업자 최대 2곳 선정
표준화된 감정평가·공시기준 도입
투기가 아닌 투자구조를 설계해야
금융위-문체부 상시협의체 구성
예술생태계의 금융종속 막아야
조각투자는 그간 규제 사각지대에 머물러 왔지만, 금융당국이 인가제를 본격 가동하면서 시장의 향방이 결정되는 중대한 분기점에 서게 됐다. 단순한 플랫폼 경쟁이 아니라 한국 문화자산의 미래 구조를 좌우하는 문제이기에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2025년 11월 현재, 조각투자 플랫폼의 인가 심사가 진행 중이며 금융위원회는 연내에 최대 두 곳의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국내 업체들은 대부분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 의사를 밝혔는데 금융위원회는 시장 초기에 유동성 분산을 방지하고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수 증권사의 참여와 신속한 서비스 실행 능력, 중소형 증권사의 참여 여부를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번 심사는 각 컨소시엄의 구성에 따라 앞으로 조각투자 시장의 권력구조와 자금 흐름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가치평가다. 기업실적이나 공시지가처럼 객관적 기준이 있는 주식·부동산과 달리 미술품과 저작권은 평가의 정합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올해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은 572억원 규모로 전년 대비 37% 축소됐지만 조각투자 시장은 2030년 300조원대 성장 전망을 갖는다. 반면 온라인 경매 거래액은 62억원으로 늘어 양극화가 뚜렷해졌다. 경매시장 축소와 온라인 성장의 괴리는 조각투자 시장의 구조적 위험을 드러낸다. 정보 비대칭과 감정평가 기준 부재는 필연적으로 가격 왜곡과 거품을 키우게 된다. 특히 일부 플랫폼이 마케팅 용도로 희소성과 투자성을 과도하게 강조할 경우 시장은 손쉽게 투기화될 수 있다.
또한 이 시장이 문화 향유의 민주화가 아니라 투기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다. 미국 마스터웍스는 블루칩 미술품 중심으로 성장했지만 신진 작가는 철저히 배제됐다. 싱가포르 위 아트 콜렉터스는 소액 접근성을 높였으나 유동성 부족으로 환금불능 문제가 반복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자금이 유명 작가 중심으로만 쏠리고, 신진 창작자는 구조적으로 소외될 위험이 크다. 더군다나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국내 가상자산 범죄 피해액이 5조원을 넘었다는 사실은 규제 공백 속의 신규 금융상품이 시민에게 어떤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조각투자 역시 제대로 된 규율체계가 갖춰지지 않는다면 같은 문제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문화부처의 역할이 비어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인가 과정은 금융위가 주관하지만 미술품 진위 감정, 저작권 적법성, 문화적 가치 보존은 금융논리로만 해결될 수 없다. 2026년 시행될 미술진흥법의 추급권 제도 역시 조각투자 플랫폼 적용방식이 미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참여가 배제된 제도화는 예술 생태계 보호라는 본래 목적을 약화시킬 수 있다. 지금처럼 부처 간 역할이 분리된 상태에서는 문화적 가치가 금융의 논리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첫째, 표준화된 감정평가와 공시기준을 도입해 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투기가 아닌 지속가능한 투자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추급권을 플랫폼에 연동해 수익이 창작자에게 환류되는 구조가 필수다. 셋째, 금융위와 문체부가 상시협의체를 구성해 금융성과 문화성이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문화와 금융이 충돌하는 영역일수록 부처 간 공동 거버넌스가 중요하다.
조각투자 인가는 새로운 금융상품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K컬처 자산을 누가, 어떻게 소유하고 분배할지 결정하는 문화 민주화의 분기점이다. 기술과 자본 위에 문화적 성찰과 공적 책임이 더해질 때에만 이 시장은 지속가능한 기반을 얻을 수 있다.
이상미 유럽문화예술 콘텐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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