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영제 속 사라진 책임감
파이낸셜뉴스
2025.11.20 18:45
수정 : 2025.11.20 18:45기사원문
주변의 한 친구는 누군가의 투자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며 다시 '모르는 게 많은' 사람으로 돌아오게 됐다. '준전문가' 친구들은 결코 자신의 답변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서울시가 지난 2004년 도입한 '준공영제'는 공공과 민간 모두가 참여하는 대중교통제도다. 노선 운행은 민간업체가 맡되, 공공이 정한 노선에서 발생한 적자를 공공이 부담하는 구조다. 도입 후 20년이 넘은 지금, 준공영제는 공공과 민간 모두에게서 신뢰를 잃는 친구가 되고 있다.
공공이 노선 계획·조정 권한을 갖고 민간업체가 위탁받아 운영하는 방식 속에서 시장의 유연성도 상실됐다. 사모펀드 등 민간자본이 진입한 뒤로도 운행 횟수는 늘어났지만 효율성이 높아졌는지는 체감하기 어렵다. 정류장에서 만나는 시민들은 '배차간격이 길다' '시간대에 따라 버스가 몰려온다' 등의 불만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수익성 좋은 노선 중심으로 공급이 늘고 취약노선은 여전히 만성적 적자를 공공이 떠안는 현상이 반복되는 모습이다.
민간은 노선·인력 혁신의 책임을 공공에 돌렸고, 공공은 반대로 과도한 적자 원인을 민간에서 찾고 있다. 민간도 공영도 아닌 준공영제로 인한 피로가 누적되며 '시내버스 혁신'의 책임 소재는 불투명해졌다.
시는 지난해 준공영제 20주년을 맞아 3대 혁신안을 발표했다. 표준운송원가 산정 방식을 사전확정제로 개편하고 중복노선 조정, 단거리 노선 확대 등을 내세웠다. '준'이라는 글자 뒤에서 책임의 공백이 쌓이는 동안 제도와 시민 모두의 피로감이 누적돼 온 상태다.
준공영제를 '위험은 공공, 수익은 민간'이라는 오랜 프레임에서 꺼내지 않는 한 같은 논쟁은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투명한 정산체계와 명확한 성과기준, 공공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는 감독체계를 만드는 일은 준공영제를 설계한 서울시의 몫이다.
chlee1@fnnews.com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