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리는거냐" 자식에게 칼이 된 말... 요양원은 정말 불효일까요?
파이낸셜뉴스
2025.11.29 08:30
수정 : 2025.11.29 09:00기사원문
[가족생애보고서ㅡ ② 부모 편]
'부모 90대·자식 60대' 함께 노년 살아가는 시대
'끝까지 모셔야 한다'에서 '어떻게 함께 버틸까'로
자신의 노후 헤치지 않는 지속가능한 방법 찾아야
[파이낸셜뉴스] 어릴 적 부모님은 늘 흔들리지 않는 존재였다. 힘든 시절을 묵묵히 견디셨고, 큰 내색 없이 우리를 키워냈다.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맞아주셨다.
이 질문은 단순한 효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20~30년을 함께 버텨야 할, 부모와 자녀의 관계 설계에 관한 질문이다.
X세대에게 처음 주어진 과제: 30년짜리 부모 돌봄
왜 지금 X세대에게 이 질문이 절박해졌을까. 한국 사회가 경험해본 적 없는 속도로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2024년 12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기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불과 7년 만에 고령사회(14%)에서 초고령사회로 건너간 것이다. 일본보다도 빠르고, 프랑스와 비교하면 거의 5분의 1에 불과한 속도다.
더 큰 문제는 노인 인구가 늘어난 것만이 아니다. 부모님의 '노년 구간' 자체가 길어졌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3년 기대수명은 평균 83.5세다. 남자는 80.6세, 여자는 86.4세다. 하지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를 보면 실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망하는 나이는 남자 85.6세, 여자 90세 안팎이다.
기대수명은 태어난 세대의 평균적인 ‘중간값’에 가깝다. 하지만 실제 사망 연령 분포를 보면, 남자는 80대 중반, 여자는 90세 안팎에서 가장 많이 사망한다. 체감상 ‘부모님이 90세까지 사신다’고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에는 '부모 70대 ↔ 자녀 40대'가 잠시 겹치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부모 80대 ↔ 자녀 50대', 적지 않게는 '부모 90대 ↔ 자녀 60대'까지 함께 가야 한다.
부모 돌봄이 짧은 스프린트에서 20~30년짜리 마라톤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X세대는 이제 '모시냐, 못 모시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모셔야 부모님도, 나도 함께 버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같이 살기는 버겁고, 멀어지기는 싫다"
그렇다면 X세대는 실제로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은 명확하다. '함께 사는 효도'는 이제 소수의 선택이 됐다.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어르신의 자녀동거가구 비율은 10.3%에 그쳤다. 2020년 20.1%에서 3년 만에 절반으로 떨어진 수치다. 반면 1인 가구는 32.8%, 부부 가구는 56.2%로 늘었다. 정부도 당시 조사에서 자녀와 함께 살지 않는 노인이 급증한 점을 가장 큰 변화로 꼽았다.
예전 효도의 정답은 '함께 사는 것'이었다.2대, 3대가 한집에 어울려 사는 풍경이 흔했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님도, 자녀도, 배우자도 각자의 생활 리듬과 취향이 뚜렷한 시대다.
실제 서울 강동구에 사는 최모씨(54)는 부모님을 도보 5분 거리 아파트로 모셨다.
"한집살이는 서로 답답하고, 멀리 살면 걱정만 커져요. 아침에 문자 한 통이면 안부를 확인할 수 있고, 저녁 반찬을 갖다 드리는 것도 부담 없어요. 지금은 가까우면서도 서로의 생활을 지킬 수 있어서 저도 편하고 부모님도 편해하시는 것 같아요."
이제는 동거만이 효의 기준이 아니다. 같은 집에 살거나, 같은 동네에 살면서 자주 드나들거나, 시설과 집을 왔다 갔다 하는 방식까지 여러 형태의 '생활권 공유'가 자연스러운 가족 구조가 되고 있다.
흥미로운 건 부모 세대의 생각도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실태조사에서 '노후 생활비를 본인이 마련하겠다'는 응답이 45.0%로 가장 많았고, '본인과 사회보장제도 병행'은 25.1%였다. 반면 오직 자녀에게 의존하겠다는 응답은 2.6%에 그쳤다.
X세대인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통계는 변화를 말해주지만, 그 숫자 뒤에는 X세대의 깊은 고민이 있다. 이들은 지금 세 가지 부담을 동시에 지고 있다.
첫째, 부모님 돌봄이다.건강검진 동행, 병원 모시기, 약 챙기기, 안부 확인. 아직 큰 문제는 없지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있다.
둘째, 자녀 지원이다.X세대의 자녀는 대부분 20~30대 청년이다. 취업, 결혼, 육아.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자녀를 여전히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다.
셋째, 자신의 노후 준비다.50대 초중반이면 은퇴까지 10년 남짓. 연금, 건강, 주거 등 준비할 게 산더미인데 부모님과 자녀 사이에서 정작 자신의 노후는 자꾸만 뒤로 밀린다.
사실 결론은 명확하다. 부모님과 나, 모두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어느 하나 포기할 수 없지만, 모든 걸 완벽하게 할 수도 없다. 그래서 X세대는 '100의 효도'보다 '지속 가능한 70의 돌봄'을 선택해야 한다.
정부 지원책 적극 활용
이에 정부도 장기요양보험과 치매안심센터, 가족돌봄휴가 등 다양한 제도를 내놓고 있다.
장기요양보험은 치매·중풍 등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어르신에게 요양시설·방문요양·주야간보호를 제공하는 제도다. 본인부담금은 시설 20%, 재가 15% 수준이고, 저소득층은 6~9%, 기초생활수급자는 0%다.
문제는 신청부터 등급 판정까지 한 달 가까이 걸린다는 점이다. 한계 상황까지 버티다 신청하면, 판정 나올 때까지 가족이 모든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부모님도, 자녀도 함께 지친다.
치매안심센터는 전국 256개소에서 무료 치매 선별검사, 가족 상담, 인지훈련 프로그램, 낮 시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병원에 바로 모시고 가기에는 부담스럽고, 아직 '치매'라는 단어를 인정하기도 두려울 때 가볍게 문을 두드려 볼 수 있는 곳이다.
가족돌봄휴가(연 최대 10일)와 가족돌봄휴직(최대 90일)도 있다. 부모님이 갑자기 입원하거나 큰 수술을 할 때, 모든 부담을 퇴사로 풀어버리는 대신 잠시 일을 멈추고 돌봄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시간이다.
이런 제도들은 '혜택'이 아니라 납세자의 당연한 권리다. 필요할 때 주저 없이 사용해야 한다.
힘든 단어 ‘요양원’… 책임을 넘기는 게 아니라, 관계를 지키는 선택
요양원, 요양병원이라는 단어는 무겁다. '끝까지 집에서 모셔야 한다'는 기준, '부모를 시설에 보내면 불효'라는 시선 때문이다. 부모 돌봄이 길어질수록, X세대가 가장 망설이는 선택 중 하나가 요양원이다. 실제로 요양시설 이야기를 꺼냈다가 “나를 버리는 거냐”라는 말을 듣고 며칠을 울었다는 자녀의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지금의 요양시설은 과거의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
전문 인력이 24시간 상주하고 식사·약·운동·인지활동이 체계적으로 관리되며 안전사고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집에서는 어려운 24시간 케어와 건강 모니터링이 제공되기 때문에 부모님이 오히려 더 편안하게 지내는 경우도 많다. 또래 어르신들과 함께 생활하며 사회적 자극과 안정적인 루틴을 갖게 되는 장점도 있다.
시설 입소는 ‘부모를 떠넘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전문 돌봄이 필요한 시점에, 부모님의 안전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선택지 중 하나다.
연세암병원 완화의료센터 박중철 교수는 "부모님을 모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집에서 모시는 것"이라며 "부모가 익숙한 생활 환경을 유지한 채 돌봄을 받을 수 있고, 병원·요양시설의 과밀화를 막아 의료체계 전체의 부담을 줄인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현실에서는 생계와 돌봄 시간의 한계, 갑작스러운 의료 위기 상황, 주거 구조의 제약 등으로 인해 집에서의 돌봄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온다"면서 "결국 시설 중심의 돌봄 선택이 불가피해지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결국 재택과 시설은 어느 하나를 버릴 수 있는 대안이 아니라, 부모의 존엄과 가족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기 위해 상황에 따라 병행하고 조율해야 하는 두 축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모님은 '얼마나 오래, 어떻게' 모시느냐가 중요하다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X세대에게 익숙한 고전 속 문장이다. 늦기 전에 '효(孝)'를 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예전처럼 집에서 끝까지 모시는 것만이 효는 아니다. 이제의 효는 부모님과 나, 그리고 우리 아이까지 모두 무너지지 않는 방식으로 오래 함께하는 것이다.
부모님께 100을 하지 못해도 괜찮다. 부모님과 내가 각자의 삶을 지키면서, 서로의 얼굴을 편하게 마주할 수 있는 '70의 돌봄'. 그것이 초고령사회에서 X세대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따뜻한 효다.
'은퇴=퇴장'이라는 낡은 공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평균수명 83세 시대, X세대가 본격적인 은퇴를 맞이하면서 기존의 은퇴 개념 자체가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담은 [은퇴자 X의 설계]가 매주 토요일 아침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면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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