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뉴노멀 시대, 단기개입 아닌 체질 개선책 시급

파이낸셜뉴스       2025.11.23 19:29   수정 : 2025.11.23 19:29기사원문
원화 구매력, 금융위기 이후 최저
미봉책 그치면 서민 경제 직격탄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을 넘볼 정도로 치솟고 있다. 지난 4월 미중 무역갈등 우려로 환율이 급등했을 때는 일시적 현상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소폭 등락을 반복하더니 지금 상황은 추세적 상향 흐름을 보여서 더욱 우려스럽다.

내년도 사업계획을 짜는 기업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환율예측에 실패하면 열심히 벌어들인 돈의 가치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원자재 가격 변수들을 예측할 수 없으면 사업계획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건 지난달 원화의 실질 가치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6년2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89.09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던 1998년 수준(86.63)과 비교해도 크게 높지 않은 수준이다. 실질실효환율 지수가 낮으면 국제교역에서 원화가 지닌 구매력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의미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환율 문제를 지적하고 대응책 마련을 주문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과거처럼 외환시장 안정 관리에 집중해서는 환율 급등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외환시장을 둘러싼 환경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단기적 개입을 통해 환율을 관리하는 방식이 통하지 않는 뉴노멀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율 관리도 이제는 단기 처방이 아닌 중장기 구조개혁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 가운데 급증하는 해외주식 투자 흐름을 구조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가 됐다. 최근 환율 급등의 이유로 내국인의 미국주식 투자 열풍을 꼽는다. 달러 매수세가 집중되면서 원화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투자자유를 제약할 순 없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가 몰리도록 매력적인 투자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현실적 구조를 감안할 때 거시경제 안정을 위협할 정도의 자본유출에는 적절한 관리방안이 불가피하다. 대미투자 합의로 우리나라 수출업체들의 더딘 환전 수요도 환율 추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 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그대로 보유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대미투자 합의에 따른 후속적인 조치로 외환수급 관리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원화가치 하락이 수출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낡은 공식도 이제 깨졌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와 달리 지금은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중간재 수입 의존도가 높아졌다. 원화 약세는 수출 가격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이점보다 수입물가 상승과 기업 부담 증가라는 악재가 더 크다.

환율이 높으면 결국 최종 피해자는 서민이다. 수입물가 상승이 장바구니물가를 자극하고, 해외여행 비용과 유학 경비도 늘어난다. 기업들도 원자재 수입 부담이 높아지면 결국 제품 가격을 높이게 되므로 소비자의 부담으로 이어질 뿐이다. 환율 안정화에 정부가 총력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정부가 환율 급등 시 외환보유액을 동원해 시장에 개입하는 방법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지금 필요한 정책은 환율방어가 아니라 환율 체질개선이다. 해외투자 쏠림현상 완화, 수출기업의 환전 유도방안, 외국인 투자 유치 확대 등 구조적 접근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정부는 지속가능한 환율 안정 전략을 서둘러 마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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