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보상금 없는” 김재환의 탈출... A급 선수들이 모두 따라 한다면? FA 제도 근간이 뿌리 채 흔들린다
파이낸셜뉴스
2025.11.27 06:30
수정 : 2025.11.27 06:44기사원문
김재환, FA 신청하지 않은 이면에 두산과 맺은 합의
우선협상 결렬되면 자유계약 선수로
두산 외 9개 구단과 다년계약 협상 가능
역대 FA 생긴 후 첫 사례... 보상 규정 사각지대
악용 가능성 높아 많은 야구인들 우려
[파이낸셜뉴스] ‘왕조 시절의 4번 타자’ 김재환이 두산 베어스를 떠난다.
이 조항 하나로 김재환의 신분은 B등급 FA 후보에서, 보상 선수·보상금 규정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진정한 자유계약선수로 바뀌었다.
두산은 26일 “김재환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2021년 12월 FA 계약 당시 ‘4년 계약이 끝난 2025시즌 뒤 구단과 우선 협상을 진행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선수는 보류선수에서 제외해 자유계약선수로 풀어준다’는 조항을 포함했다. 25일 저녁까지 협상을 이어갔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표면적으로는 우선협상 결렬 → 방출이라는 수순이지만, 사실상 4년 전부터 예정된 ‘조건부 무보상 이적권’이 발동된 셈이다.
핵심은 김재환이 FA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음에도 FA보다 더 유리한 지위를 얻었다는 점이다. 2025시즌 종료와 함께 FA 자격을 다시 얻었지만, 김재환은 FA 신청서를 내지 않았다. FA 시장에 나오지 않고 원소속 구단과 먼저 협상하는 길을 택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잔류 의지가 강한 베테랑의 선택’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실제로는 2021년 계약 시점에 “우선협상이 결렬되면 무보상으로 풀어준다”는 조항이 이미 삽입돼 있었다. FA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FA보다 더 유리한 ‘제3의 출구’를 미리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KBO 리그에서 ‘자유계약선수’라는 신분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잘 알려진 FA다. 고졸 8년·대졸 7년 등 정해진 기간 이상 1군 등록을 채우면 얻는 자격으로, 등급에 따라 보상선수와 보상금이 붙는다.
둘째는 방출·임의탈퇴 등으로 어느 팀에도 속하지 않은 선수다. 후자는 말 그대로 완전한 자유계약선수다. 문제는 김재환이 선택한 길이 이 둘의 경계에 서 있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두 번째 유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만약 김재환이 정상적으로 FA를 신청했다면 B등급이 되는 것이 유력했다. 이 경우 그를 영입하려는 구단은 보호선수 25명 외 보상선수 1명과 더불어, 전년 연봉 100%(10억 원) 또는 200%(20억 원)를 두산에 지불해야 한다. 나이와 최근 기량, 수비 포지션 등을 감안하면 이는 가벼운 조건이 아니다. 많은 구단이 망설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번 방출은 모든 조건을 없앴다. 보상선수도, 보상금도 없다. 김재환을 원하는 팀은 순수하게 계약 기간과 금액만 협상하면 된다. 두산 입장에서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던 선택이었다. 2021년 FA 협상 당시 두산은 4년 최대 115억 원(계약금 55억·연봉 합계 55억·인센티브 5억)을 안겼다. 당시 3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거포에게 이 정도 규모의 장기 계약을 안기면서, 구단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총액과 연평균을 다소 낮추는 대신 선수에게 유리한 옵션을 내줬다. 그것이 바로 ‘계약 종료 후 우선협상 결렬 시, 조건 없는 방출’ 조항이다.
단기적으로는 연봉 압박을 낮추고, 선수의 잔류 의지를 붙잡는 카드였지만, 장기적으로는 섣부른 선례가 될 수 있는 조항을 스스로 열어준 셈이 됐다.
2008년 두산에 입단한 그는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리그 최고 수준의 좌타 거포로 군림했다. 이 6년 동안 김재환은 188홈런을 쳤다. 같은 기간 최정(SSG 랜더스)의 218홈런에 이어 2위였다. 타율 0.304, OPS 0.949. 그가 중심타선에 버티고 있던 2015∼2021년, 두산은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하지만 FA 잔류 계약 기간이었던 2022∼2025년에는 성적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이 4년 동안 김재환은 타율 0.250, 75홈런, OPS 0.788을 기록했다. 100억대 FA에게 기대하는 임팩트에는 한참 못 미쳤다. 2024년에는 136경기에서 타율 0.283, 29홈런, OPS 0.893으로 반등했지만, 2025년 다시 103경기, 타율 0.241, 13홈런, OPS 0.758에 그치며 기복을 노출했다. 두산이 30대 후반 김재환에게 대형 재계약을 제시하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계약 구조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김재환 개인의 권리 행사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선수 입장에서는 4년 전 합법적인 계약 조항을 통해 ‘보상 없는 이적 가능성’을 확보해 둔 것이고, 이제 그 권리를 실행했을 뿐이다.
문제는 이 모델이 ‘성공 사례’로 인식될 경우다. 앞으로 A급 FA들이 대형 계약을 추진하면서 “4년 뒤, 혹은 5년 뒤 우선협상 결렬 시 무보상 방출” 조항을 요구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수순이다.
이런 계약이 반복되면 KBO가 애써 구축해 온 FA 보상 시스템의 의미는 급격하게 퇴색한다. 리그 최고급 스타 선수들이 FA 보상 체계를 우회해 ‘완전 자유계약’으로 풀려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해질 수 있다. 경쟁 구단 입장에서는 보상선수와 보상금 부담 없이 전력 보강을 할 수 있으니 유혹이 커지고, FA 시장 전체의 균형은 무너진다. 규정의 사각지대를 이용한 계약이지만, 그 파급력은 한 명의 FA 계약 이슈를 넘어선다.
이번 사례는 동시에 구단 스스로가 FA 제도의 허점을 키웠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두산은 당시 구단 상황을 고려해 선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전례없는 옵션을 내주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시간이 지나, FA 보상 시스템 전체를 흔드는 선례가 됐다. 스스로 목을 조이는 형태가 된 것이다.
김재환의 가치는 시장에서 평가받을 것이다. 문제는 어느 구단이 그를 데려 가느냐가 아니라,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으며 이런 부작용을 어떻게 방지할 것이냐다.
FA를 신청하지 않았는데도 FA보다 더 유리한 조건으로 시장에 나올 수 있다면, KBO의 FA 보상 규정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보류권과 방출, FA 등 선수 신분을 나누는 현재의 틀은 여전히 유효한가.
그리고 구단이 개별 계약서에 어떤 문장을 넣더라도, 그 결과가 제도 취지와 충돌할 때 KBO는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
FA 계약 자체를 넘어서는 또 하나의 거대한 쟁점이 2025년 스토브리그에서 등장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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