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아니면 0 '정치양극화' 시대의 입법, 시민참여가 해법"

파이낸셜뉴스       2025.11.26 18:07   수정 : 2025.11.26 18:07기사원문
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
국회, 계엄사태 잘 극복해냈지만
갈등 깊어져 입법조사처 역할 막중
의료개혁·정년연장부터 개헌까지
시민참여 늘리고 운영할 방안 고민



정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면서 사회적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회의 입법 기능을 지원하는 국회입법조사처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대의민주주의를 연구한 정치학자인 이관후 국회입법조사처장은 26일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전에도 정치적 양극화가 심했지만 최근에는 여야 간 갈등이 극단적으로 커졌다"면서 "입법 과정에서도 심도 있는 논의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국회의) 입법은 완벽한 이상이 아니고, 사회적 갈등의 최종 타협점이자 국가가 미래를 준비하는 시발점"이라며 "지금 국회가 그런 역할을 잘하고 있느냐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달 취임 1주년을 맞이한 이 처장은 1976년생으로, 역대 최연소 국회입법조사처장이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와 정부, 학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왔다. 2023년부터는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재직했고,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장으로 임명됐다.

이 처장은 정치 갈등이 심화되면서 법안을 제출하고 심의하는 과정에서 검토가 자연스레 부족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양쪽의 입장이 조정되고 타협이 돼야 하는데 100 아니면 0의 결론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면서 "다른 법과의 충돌 관계, 현실적인 어려움 등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잘 살펴지고 있는지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이 처장은 "더 혁신적이고 능동적인 국회입법조사처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현안 대응능력과 국가적 과제 등에 대한 대응력을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곧 다가올 개헌 국면에서 국민참여 확대 문제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해외서 배우러 오는 국회입법조사처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007년 3월 설립된 정책 중심의 선진 국회 구축을 위한 입법정책 싱크탱크다. 과거에는 우리가 해외기관 등을 배우려 노력했다면 이제는 해외에서 한국의 국회입법조사처를 벤치마킹하러 오는 사례가 굉장히 늘었다는 후문이다.

이 처장은 "우리와 경쟁 상대, 또는 비슷한 레벨에 있다고 생각되는 기관이 미국의회조사국(CRS), 유럽의회조사처(EPRS)인데 세계적으로 보면 규모는 좀 작지만 역할은 이에 못지않다고 생각한다"면서 "전문성을 어떻게 더 키울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마다 의회 조사기구 국제 세미나를 열고, 한국 국회를 찾는 해외 국회의원이나 의회 조사기구 직원들이 굉장히 많아졌다"면서 "우리보다 민주주의 후발국들이 의회 조사기구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저희들이 멘토링 역할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위기가 있었지만 잘 극복했기 때문에 문화 등 다른 분야들처럼 K-민주주의에 대해서도 후발국들이 관심을 많이 갖고 있고, 의회의 전문성을 어떻게 높일 것이냐는 부분에 있어서 이제 우리의 의회 조사기구 역할을 중요하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태 1주년을 앞둔 가운데, 국회입법조사처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처장은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 처장이 되고 나서 거의 보름 만에 비상계엄 사태가 났다"면서 "그 전에도 정치적 양극화가 심한 편이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갈등이 더 심해지고 이는 입법 과정에서도 심도 있는 검토가 잘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 것이 제일 걱정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안에 대한 사전적인 검토, 입법 과정에서의 검토가 적어져서 부담이 더 커졌다. 예전에는 당의 연구소나 당의 정책위, 여야 논의 과정에서, 또 사회적 의견을 듣는 것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부분이 굉장히 약해졌다. 저희가 놓치면 다 놓치게 되는 형국"이라고 우려했다.

■"국회 갈등 심화, 사회적 합의 중요"

이 처장은 "과거에는 국회 갈등이 심하면 국민 통합에 대한 시민적 요구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유권자 및 국민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생기고,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깨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이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합의가 동반된 입법이 이뤄지려면 세대와 계층, 성별 등 이해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역할을 누군가가 해줘야 한다"면서 "어려운 상황에서 국회의장이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대목"이라고 했다.

앞서 지난 10월 15일에는 국회가 주도하고 노사가 참여하는 '국회 사회적 대화기구'가 출범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운영협의체 구성과 운영을 적극 지원해왔다.

이 처장은 정치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시민의 숙의를 거치는 과정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처장은 "최근 우려스럽게 보는 것은 당사자주의가 대단히 강해졌다는 것"이라면서 "어떤 문제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당사자주의 혹은 전문가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 강해졌다"고 했다. 이 처장은 "당사자주의는 특정 분야에서는 아주 강한 편인데, 이게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굉장히 심화시키고, 결국 국민이 원하는 개혁을 잘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그런 개혁들은 대체로 많이 실패했다. 아무리 당사자들끼리 합의를 해도 국민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정년연장이나 개헌 문제도 마찬가지다. 장기적으로는 이제 의료 개혁 등의 부분들도 국민들이 더 많이 참여할수록 타협의 여지나 실행력도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과거처럼 기계적 의견수렴이 아니라 정책과 입법과제에 맞게 차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처장은 "처음에 의제를 설정할 때 국민이 많이 참여하는 게 중요한 주제가 있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토론이나 숙의 과정에서 또는 의사결정을 할 때 참여하는 게 중요한 것이 있을 것"이라며 "시민 참여라고 한다면 한 가지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입법조사처는 각각의 정책 및 입법 과제에 맞게, 거기에 필요한 시민 참여는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운영해볼지 등에 대해 검토하고 제도화하는 부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입법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예를 들어 과거에는 개헌안을 대통령이나 국회에서 그냥 제출했었다. 그런데 만약 지금 개헌안이 그렇게 제출된다면 국민투표에서 부결될 것이다. 개헌안을 만드는데 국민의 의견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찬반만 투표하라는 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cjk@fnnews.com 최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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