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X’ 김유정 “폭력신 찍다 졸도, 미친 듯 웃음이..파국으로 치닫죠"
파이낸셜뉴스
2025.11.28 11:29
수정 : 2025.11.28 16:14기사원문
감정 결여된 백아진 “제가 느낀 슬픔조차 숨겨야 했죠”
[파이낸셜뉴스] "아는 지인들조차 ‘무섭다, 너무 고생하고 잘했다’고 연락해왔죠.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질감 때문에 제 작품을 잘 못 보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정말 재밌게 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기분이 좋고, 뿌듯합니다.”
티빙 오리지널 ‘친애하는 X’가 내주 종영을 앞둔 가운데 성공적으로 연기 변신한 김유정이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마주했다.
지난 27일 공개된 9-10회에서는 아진의 전 연인이자 톱스타 허인강(황인엽 분)의 죽음 이후 추락한 여배우 아진이 성공한 기업가 문도혁(홍종현)과 손잡고 성공적으로 재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화려한 결혼을 통해 상류층에 올라선 아진은 곧 남편의 또 다른 얼굴을 목격한다. 드라마 속 파국적 전개와 달리, 김유정은 이날 드라마에 쏟아지는 호평 덕에 미소가 만연했다.
“속내 모를 캐릭터… 대사 끝 어미부터 눈 뜨는 방식까지 달리해”
백아진은 끔찍한 가정 폭력 피해자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조종해 이득을 취하는 소시오패스이기도 하다.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면 상대가 학교 선생이건 동창이건 상관없이 가차 없이 복수하고, 때로는 허인강처럼 자신의 성공을 위해 주변 사람의 마음을 주저없이 이용한다.
이 과정에서 어릴 적 한때 법적 남매였던 준서(김영대 분)와 폭력적 가정에서 자라 마음 둘 곳 없는 고교 동창 재오(김도훈 분)를 심복처럼 부린다. 자신의 모친이 어린 아진을 학대할 당시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한 준서는 아진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고, 아진은 이런 준서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한다. 재오에게 아진은 쓸모없다고 느낀 자신에게 쓸모 있는 인간이라고 느끼게 해준 특별한 존재다. 둘은 아진을 "보스"라 칭하며 그녀를 조력하나, 아진은 둘의 진심을 알면서도 다른 남자와 연애하고 또 예고없이 결혼한다.
김유정은 속을 알 수 없는 백아진 캐릭터를 어떻게 준비했을까? 그는 “아진은 속내가 잘 드러나지 않는 인물이라 디테일한 톤이 중요했다”고 했다. “대사도 일방적으로 툭 던지는 식이 많아 어미를 다르게 처리하거나 텀을 길게 두는 방식으로 말맛을 살리려 했다”며 “가까운 사람이 보기엔 ‘쎄하다’고 느끼는 지점을 찾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강도 높은 폭력 신도 여러 차례 소화했다. 특히 아버지와의 폭력 신을 촬영하다 현장에서 실제로 졸도했다. 그는 “그 신을 며칠 동안 연달아 찍었고 감정 소모도 크고 체력적으로도 너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마무리하는 장면에서 체력이 완전히 고갈됐는지 쓰러졌다”며 “장면에 너무 몰두해 잠깐 다른 공간에 있는 것 같은 몽롱함이 들었고 쉽게 깨어나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준서 엄마와의 몸 싸움 장면에서는 미친 듯이 웃어 보는 이를 소름끼치게 했다. 김유정은 “당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감정을 절제하다 갑자기 폭발하는 장면이라 여러 감정을 섞고 싶었고, 준서 엄마에게만은 내 진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또 “웃다 보니 몸까지 제어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고 덧붙였다.
아진의 아버지와 결혼한 준서 엄마 지선(김유미 분)은 비도덕적이고 염치없는 캐릭터다. 준서는 불륜으로 낳은 아이고, 남편이 죽은 뒤 아진의 아빠와 잠시 재혼했다가 이혼한다. 그는 방탕하게 생활하며 돈을 탕진하고, 그럴 때마다 시아버지와 아들을 찾아가 손을 내민다.
"백아진을 응원하는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죠"
백아진을 이해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김유정은 “아진을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이 사람은 이렇게 행동한다’는 방식으로 받아들이려 했다”고 했다. “오히려 힘들었던 건 제 안에서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감정을 숨겨야 하는 순간들이었다”며 “7~9화에서는 슬픈 감정이 스칠 법도 한데 아진은 그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서 제 감정을 누르고 연기해야 했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시청자 반응은 놀랍고 신기했다. 김유정은 “촬영 전에는 아진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안 들고 응원하고 싶단 마음도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상황 안에 있다 보니 외롭고 힘든 지점이 보였고, 감독과도 ‘우리가 이 사람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응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작업했다”고 말했다.
아진을 응원하는 반응에 대해선 "아진의 불우한 가정환경과 누구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진은 극단적일 정도로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런 욕망 자체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본다. 아진은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잘못된 사람”이라고 분석했다.
김유정은 소시오패스를 연기 과정에서 외부 레퍼런스를 찾기보다 심리학 자문을 활용했다. 그는 “실제로 이렇게 행동할 수 있나, 감정이 결여돼 있나가 궁금해 심리학 교수에게 자문했다”고 했다. 또 감독이 촬영 전에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가스라이팅 표현들을 정리해줬는데 몇 줄 보다가 무서워서 닫아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촬영 중간에 상황에 맞는 요소를 찾아 쓰며 캐릭터를 구축했단다.
"김영대와 김도훈, 캐릭터 그 자체로 존재해줬죠"
극중 주변 인물에 대한 백아진의 감정은 무엇일까? 먼저 부모나 다름없던 할머니 죽음 이후 아진에게 버림받고 극단적 선택을 한 허인강을 향한 감정선에 대해 그는 “보통의 사랑을 느끼진 않았다”고 봤다.
하지만 주변 캐릭터에 대한 아진만의 정이 있었다고 본다. 그는 "인강에 대해 준서·재호와는 또 다른 결의 감정이 있었다”고 해석했다. 특히 인강의 할머니는 아진이 생애 처음으로 만난 참된 어른으로, 진실이 드러난 후에도 아진을 용서하고 품는다.
준서를 연기한 배우 김영대가 촬영 당시 "김유정의 기에 쫄았다”고 밝힌 일화에 대해서는 “현장 분위기는 좋았다"며 "특히 김영대와 김도훈은 캐릭터 그 자체로 내 앞에 서 있었다”고 했다. “덕분에 완전한 몰입이 가능했고 지금도 준서와 재호는 그 인물로 느껴질 정도”라며 이번 작품과 배우들에 대한 끈끈한 애정을 드러냈다.
결말 방향성에 대해서는 “파멸의 이야기가 나올 듯하다”고 예고했다. “작품 자체가 백아진의 일대기이고 큰 틀은 원작과 동일하다”며 “웹툰과 드라마는 다른 분야라 시청자가 따라오려면 웹툰에서 비어 있는 서사를 어느 정도 채워야 한다는 판단하에 각색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예상대로 파국으로 치닫는 작품”이라며 “어떤 파국으로 치닫는지 지켜봐달라"고 부연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인간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느꼈죠.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데 결국 모든 게 인간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
한편 데뷔 20년을 맞은 김유정은 배우로서 느끼는 불안과 부담도 털어놨다. 그는 “겉으론 평온해 보여도 사람인지라 불안하고 조급해질 때가 있다”며 “보여지고 증명해야 하는 직업이라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스스로를 다잡으려 한다”고 했다. “이번 작품 반응이 좋아서 부담도 있지만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나를 정리하고 있다”며 한층 단단해진 모습을 내비쳤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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